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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버닝썬 딜레마에 빠진 경찰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02 16:55

수정 2019.05.02 16:55

[여의도에서] 버닝썬 딜레마에 빠진 경찰

고대 그리스에 프로타고라스라고 하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수업료를 받고 재판을 위한 변론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자 중 한 명이 "당신에게 변론을 배워 변론술의 대가가 되면 수업료를 내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러자고 한 뒤 그에게 변론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제자는 세월이 흘러도 어떤 소송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프로타고라스가 그 제자에게 수업료를 내라는 소송을 걸어 재판을 치르게 됐다.

이 자리에서 프로타고라스는 "내가 소송에서 이기면 당연히 수업료를 나에게 내야 하고, 내가 소송에서 진다면 스승인 나를 이길 만큼의 변론술 대가가 된 것이니 수업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는 "제가 소송에서 이기면 당연히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소송에서 진다면 변론술의 대가가 아니라는 말이 되니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맞받아쳤다.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프로타고라스의 재판' 내용이다.

흔히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딜레마라고 한다.

3개월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버닝썬' 논란이 경찰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실제 수사와 국민 인식의 간극이 날로 커지면서 수사 결과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진척이 안되면 안되는 대로 비판을 받고 있다.

단순폭행사건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이후 경찰유착, 마약, 성매매, 횡령 등 걷잡을 수 없이 사안이 확대되면서 아직까지도 끝이 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찰유착 부분이다. '경찰이 경찰을 수사한다'는 일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동안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범죄수사대 등 인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경찰유착 수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장기간 수사에도 연예인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 총장'으로 거론된 윤모 총경 외에는 흔히 말하는 '고위층'이 없다는 데 경찰의 고민이 있다. 그나마 윤 총경에 대해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이라는, 사건과는 크게 관계없는 혐의를 적용한 게 한계다. 하지만 그마저도 김영란법에서 정한 금액기준을 총족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경찰 입장에서는 경찰 수장이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입장을 내고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부담이 되고 있다. 수사 결과 경찰 고위층과 유착이 없다면 다행이어야 할 상황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경찰유착 수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연예인 성매매, 횡령, 마약 등 다른 수사에서 성과를 내더라도 경찰유착을 덮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선 경찰관들의 쏠림에 따른 치안공백에 대한 우려도 날로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경찰 조직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경찰 입장에서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제는 버닝썬 이후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만큼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장기간 수사를 진행했는데도 이 정도 성과가 나왔다면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오해와 불신이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최고 수뇌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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