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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부동산 재테크 '각자도생'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05 17:38

수정 2019.05.05 17:38

[윤중로] 부동산 재테크 '각자도생'

지난 3월 말.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고가건물 매입 논란'이 터지자 부서 카톡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청와대 대변인이 어떻게 현직에 있을 때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나"부터 시작해 "재개발 이후 진짜 아파트 2채와 상가 1실을 받을 수 있을까" "역시 한강변이 대세다. 입지는 최고로 고른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그러던 중 조용히 있던 한 후배의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대출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결국 원하는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경기도로 밀려났다. 맞벌이인데도 그렇게 정부 정책이라며 야박할 정도로 대출을 안 해주던데…."

김 전 대변인이 서울 흑석동 상가를 25억7000만원에 샀는데 그중 남의 돈이 16억원이다.
국민은행 대출이 10억원에 달한다. 6억원 정도가 사채와 임대보증금인데, 통상 은행은 다른 대출이 있으면 한도만큼 대출을 잘 안해준다. '은행돈 빌리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으니 할 말은 없다.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데도 가만히 있으니 "부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한 후배가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한마디 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는 뜻처럼 현직 청와대 대변인도 자기 살길을 찾아서 재테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문재인정부가 '포용국가'를 내걸었지만 청와대 핵심도 이를 믿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실제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를 나서기 직전 기자실을 들러 인사하면서 "대통령이 어디서 살 거냐고 걱정을 해주시더라"고 전했다.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는 청와대 대변인도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 부동산 재테크를 하는데 하루 먹고 하루 사는 범인(凡人)들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오죽하겠나. 특히 최근 경제가 좋지 않아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입주 후 높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로또 분양 아파트'가 등장하면 부동산 인터넷 카페가 시끄러워진다. 주변 아파트 시세와 향후 전망은 기본이고, 해당 부지까지 다녀온 사진이 속속 올라온다. 하지만 예상보다 청약경쟁률은 낮다. 인기 아파트도 수십대 1 정도이고, 일부 아파트는 미분양까지 발생한다. 청약 열기는 뜨거운데 경쟁률은 예상보다 낮은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무주택자에 대한 1순위 청약을 확대했지만 중도금대출 금지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 제한으로 자금 마련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분양가 9억원 초과는 중도금대출이 불가능하다. 계약금을 포함해 10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보유해야 강남권 59㎡형 아파트를 청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신이 난 건 현금부자들이다. 돈 없는 서민들이 청약하지 못해 미분양 난 것을 주워 담는다는 뜻의 '줍줍족(族)'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실제 최근 강남권 아파트에는 '무순위 청약'이 유행이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이 없어도 만 19세 이상이면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3.3㎡당 분양가가 평균 4687만원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방배그랑자이'에 6700명 넘는 무순위 청약자가 몰렸다.
부동산 시장만큼은 각자도생하고 싶어도 서민들은 한쪽 발이 묶인 형국이다. 정부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현실이 다르게 흘러간다면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하는 게 '포용국가'의 기본이 아닐까.

courage@fnnews.com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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