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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유통의 新주역, 인플루언서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5 17:16

수정 2019.05.15 17:16

[fn논단] 유통의 新주역, 인플루언서

최근 임블리 사태가 불거지면서 SNS 스타(인플루언서)에 의한 유통방식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임블리는 부건에프엔씨 임지현 상무가 81만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발판으로 오픈한 쇼핑몰인데 2018년 17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정도로 급성장한 유통망이다. 그런데 이 쇼핑몰에서 판매한 호박즙에서 곰팡이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고, 거기에 무성의한 늑장대응을 하다가 고객들의 엄청난 비판과 매출폭락이 촉발된 게 바로 '임블리사태'다. 이 일로 인플루언서 유통방식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지 또는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새로운 소비방식이 작은 문제를 일으키면 크게 부풀려 규제하려는 우리 사회의 못된 속성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미 인플루언서에 기반한 매출이 20조원 규모로 성장한 상황에서 규제 만능주의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포노사피엔스 문명의 중심지인 중국은 이미 인플루언서에 기반한 거대한 유통망과 직업군이 형성돼 있다. 바로 개인방송으로 물건을 파는 왕훙 생태계다.

전체 팔로어수 6억명, 경제적 가치 332조, 올해 100조 매출을 예상한다는 왕훙 경제는 '차이나드림'의 산실이기도 하다. 최고의 왕훙 파피장, 장다이 등은 이미 연매출 5000억을 넘겼고 이런 스타들이 등장하자 엄청난 수의 중국 청년들이 이 시장에 참여하며 더욱 소비 규모를 키우고 있다.

중국경제에서는 TV홈쇼핑과 오프라인 매출이 줄어드는 반면 왕훙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며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성공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 3월 21일 중국의 대표적 뷰티왕훙인 웨이야는 한국화장품 85만개를 선주문한 채 생방송으로 이를 완판시켜 우리나라 화장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초당 2만개씩 팔려나간 이 행사를 무려 490만명이 시청하며 구매 버튼을 눌렀다고 하니 새로운 소비혁명이 현실이 됐다고 할 만하다. 더욱 놀란 것은 웨이야의 감사글이었다. 행사지원에 감사드린다며 언급한 단체가 TV방송국, 다롄시시청공무원, 다롄시관세청, 다롄시보세창고 등 대부분 중국의 공무원들이었다. 이들이 발벗고 나서 도운 것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모든 것이 규제 대상이지 않았을까?

임블리사태가 나자 우리는 곧바로 부작용을 언급하며 규제를 들먹인다. 사실 임블리사태는 인플루언서에게 단 한번의 실수도 치명적이라는 교훈이다. 중국의 왕훙들은 그래서 자기가 판매하는 물건은 반드시 직접 써보고, 그 품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중국의 왕훙경제가 커지는 이유는 나쁜 상품을 좋게 소개했다가는 끝장이라는 교훈을 얻은 왕훙들이 상품의 관리와 가격유지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들은 기존 유통망보다 왕훙을 더 믿는다. 이런 생태계라면 규제로 막을 것이 아니라 중국처럼 건전한 성장으로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 기존 유통을 대체하는 인플루언서 유통의 성장은 권력이 유통기업에서 소비자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받은 거대자본 회사가 유통을 독점하는 것보다 실력 있는 개인이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고 더불어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만들어가는 사회, 이것이 포노사피엔스 문명 변화의 핵심이다. 그런 혁명이라면 가볼 만하지 않을까. 규제로 혁명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역사가 입증한 사실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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