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덜컹거리는 패스트트랙 열차

신속처리안건 지정 이후 국회 민생입법은 올스톱..정책경쟁 트랙 복원할 때


이른바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들의 전도가 오리무중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편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공수처법 등 안건들 전부에 대해 상정 주체 내부 이견이 불거지면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9~30일 심야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군소 야 3당을 끌어들여 국회 상정을 강행했었다.

무엇보다 정부 내 검경수사권 갈등은 비등점을 넘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16일 '작심 회견'으로 반기를 들었다. 형사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법도 사법개혁이란 명분이 상당부분 퇴색했다. 민주당 백혜련 안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안이 동시에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될 때부터 이미 예견됐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신임 원내대표는 아예 "공수처 처장, 차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민주당 안이 통과돼선 안 된다"고 오금을 박았다.

'패스트트랙 4법'을 함께 지정한 4당 공조도 금이 가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딴소리가 나오면서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전체 의석 수는 현행처럼 300석으로 고정한 채 253석인 지역구를 28석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를 늘리는 합의를 번복했다. 호남 지역구가 줄어든다는 당내 반발이 나오자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면서다.

패스트트랙 열차가 이렇게 덜컹대는 동안 국회는 멈춰 섰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일방 상정을 비판하며 장외투쟁을 시작하자 민주당도 '맞불 민생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쌍방 진영에서 황교안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을 들먹이며 '사이코패스'니, '한센병 환자'니 막말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국회가 민생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본연의 업무는 제쳐두고 '삿대질 쇼'만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는 사이 민생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4월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이 2015년 이후 최대치인 25.2%에 이른 게 그 증좌다. 통계청의 발표가 맞다면 청년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자라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도 여야의 벼랑끝 대치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비롯해 일자리난을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는 지연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불경기는 이웃이 실직자가 되는 것이고, 경제공황은 내가 실직자가 되는 것"이라고. 여권이 당사자인 서민층에게 절박한 실업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작 시급히 다뤄야 할 민생법안들 대신에 범여권 내 조율도 안 된 안건부터 패스트트랙에 올려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니….

여당이 재집권을 추구하고, 야당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건 당연하다. 여는 국정의 성과로, 야는 대안을 내는 정책경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정도다. 다만 선거법을 유·불리 기준에 따라 일방적으로 바꾸려 한다면 문제다. 복싱에서 벨트라인 아래를 때리는 꼴이라서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만은 합의 처리가 옳다.


이 대명천지에 여야가 자신은 천사, 상대를 악마로 여긴다면? 그런 오만한 사고야말로 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열린사회의 적'이다.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라는 양 극단의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낀 그는 "국가정책에 궁극적 인식은 존재하지 않고, 더 나은 해결책을 향한 접근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여권이 뭔가 패스트트랙 정국을 푸는 이니셔티브를 취해 민생입법 처리 속도를 높여야 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