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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향해 한 발짝

이설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3 17:26

수정 2019.05.23 17:26

[여의도에서]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향해 한 발짝

2002년 1월. 대학을 1년 휴학한 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한 달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 로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인민박에 머물고 있던 중 인터넷을 통해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 북한을 지칭해 '악의 축'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 또래였던 민박 손님들과 모여 앉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우려했던 기억이 난다. 당장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 한반도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들어본 당시 분위기는 당시 내가 로마에서 우려했던 정도는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북한의 핵 개발이나 미사일 발사로 인해 한순간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반복됐다.

그랬던 부시 전 대통령이 17년이 지난 2019년 5월 23일 한국을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화가로 변신했다는 그는 유족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물로 가지고 왔단다. 추도사를 통해 그는 "한국의 인권에 대한 그분의 비전이 한국을 넘어 북에까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화 상대로 인식하지 않았던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던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추도하기 위해 먼 곳까지 왔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07년 10월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한반도의 평화시대를 열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이를 통해 발표된 '10·4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후 9년간의 보수정권을 지나며 단절되다시피 한 남북 관계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약 6개월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나 평화를 논했다. 올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분위기가 다시 경직됐지만, 남북 그리고 북·미가 여전히 서로를 대화해야 할 파트너라고 인식한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다음 달은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분단 이후 남북 정상 최초로 만나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며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신뢰를 다진다"고 밝혔다.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등이 실현됐다.

한정된 자원과 날로 감소하는 인구, 우리가 강점을 가진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 등 다른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앞으로 더욱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지도가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확장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현재 남북 관계의 교착이 종래에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의 한 단계가 되기를 기대한다.
70년의 반목이 한순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단 하나의 목표', 즉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ronia@fnnews.com 이설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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