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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정보 비대칭성과 블라인드 채용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3 17:29

수정 2019.05.23 17:29

[여의나루] 정보 비대칭성과 블라인드 채용

주류경제학은 시장실패를 제외하곤 시장은 완전무결하며 인간은 수학적 기대가치의 최대화라는 합리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제도주의자 일부는 다른 가정을 하는 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만 갖고 있고 정보비대칭성이 있는 경우 기회주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보비대칭성과 기회주의적 행동에 의한 시장기능의 원활치 않은 작동에 대해 제도주의는 시장불충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 거래가 문제다. 예를 들어 의료서비스는 전문지식의 특성으로 인해 의사와 환자 간 큰 정보격차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신뢰성 높은 제3자의 개입이 없다면 거래에서 환자는 불리해질 수도 있다.
의사면허제도는 정보부족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환자를 위한 제도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분야는 신뢰성 높은 제3자에 의한 면허, 인증, 보증 등이 있어야 거래가 활성화된다. 한편, 지속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중장기 거래분야도 문제다. 예를 들어 고용거래의 경우 고용인의 피고용인에 대한 정보는 취약해 양자 간 정보비대칭성은 강한 편이다. 계약 당시뿐만 아니라 이후도 문제다. 피고용인이 고용인의 피고용인 행동에 관한 정보부족을 악용해 고용인에게는 손실이 되고 피고용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동을 취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이들을 모두 예측하고 이를 방지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계약 주체들은 관리조직이나 규칙 혹은 유인 체제를 만들기도 한다. 기업의 각종 성과수당의 조건적 특성, 정보비대칭성 역방향에서 설계되는 계층 등이 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 당시 정보비대칭성을 완화하는 일일 것이다.

2017년 블라인드 채용방안이 도입되면서 공공부문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금년부터는 민간 기업도 시행대상이 되었다. 지역, 가족관계, 학력 등의 정보 대신 직무관련 지식과 기술 등으로 채용한다는 것이다.

정보비대칭성 측면에서 잠재적 문제들이 있어 보인다. 이 방식은 양자 간 정보비대칭성을 악화시켜 적합한 사람 채용을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불리한 정보를 숨기고 채용된 피고용인이 있다면 기업의 직무요구와 자신의 역량 간 불일치로 인해 직장 적응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1년 동안 많게는 15%에 이르는 신입사원 퇴직률을 보이는 대기업이 있는 현실에서 이 제도는 이런 현상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특히 출신대학과 학점을 미공개토록 하는 것은 정보비대칭성 완화라는 국가의 인증기능을 포기토록 한다는 점이다. 입학시험, 소정의 교과과정, 학점 이수를 거쳐 획득하는 학위와 학점에 대해 우리는 대학별 일정한 신뢰를 주고 있다. 이런 정보를 미공개토록 하는 것은 학위 등이 국가의 인증기능 중 하나라는 존재이유를 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최근에는 고학력 인력에 대한 기업 수요는 확대되고 있다. 고학력자의 경우 학위증명서는 물론, 논문이나 발표 논문지의 질, 저술 실적 등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향은 일회성 시험보다는 제3기관의 인증이 신뢰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제도의 공정성 강화 취지는 살릴 필요가 있다.
출신지역, 가족관계 등 피고용인의 역량과 무관한 정보 미공개는 정당하다. 한편, 인턴제 활성화 등으로 피고용인 역량과 관련된 정보비대칭성 완화 노력은 강화하고, 대학 교육과정은 공정하고 타당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제도와 관행개선을 위한 관계자들의 노력을 기대해본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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