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게임 질병코드' 헌법 침해…"정신질환 꼬리표 우려"

뉴시스

입력 2019.05.28 15:13

수정 2019.05.28 15:13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 법적 쟁점 시사 "단순 통계·건강 상태 보고 위한 목적으로 한정해야" "질병 진단 위해 사용되는 것은 자제해야" 청소년 87.9%, 477만2574명이 게임 이용 복지부, 추후 치료 대상 게이머는 전체 1~2% 예상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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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게임 과몰입' 현상과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헌법상 문제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는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와 함께 28일 오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문제점으로 우리나라 헌법상 ▲문화국가원리와의 조화 가능성 ▲개인의 행동 자유와 자기 결정권의 침해 가능성 ▲명확성 원칙 침해 가능성▲과잉금지원칙 침해 가능성 ▲경제적 자유(영업의 자유) 침해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내용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ICD-11 발효 시점은 2022년 1월이다.

ICD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근거로 삼고 있다.
이번 안건의 통과로 각국은 2022년부터 WHO의 권고사항에 따라 새 질병코드 정책을 도입해 시행하게 된다. 단, 권고인만큼 국가들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ICD-10를 한국 진료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7)를 사용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금 청구, 보험사의 질환코드 관리, 사망통계 작성 등이 모두 KCD-7 분류 체계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KDC-7은 2015년 9월 고시됐고, 2017년 1월 1일부터 사용되고 있다. 새로 의결된 ICD에 맞춰 2022년 이후에는 KCD-8이 개정돼 사용될 예정이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각국 보건당국은 질병 관련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며, 질명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임 회장은 "소위 '신의진법' 등 게임을 마약이나 알콜 등과 함께 '중독'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강력한 입법을 시도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과거의 사례를 비춰볼 때, 이번 WHO의 의결을 계기로 기존의 '신의진법' 등 강성 법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부득이한 경우 국가가 국민의 문화영역에 개입을 할 수 있지만, 이는 객관적인 통계를 밑받침으로 하거나 이를 통한 자율적인 개선을 전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가가 먼저 나서 국민의 행동양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다수의 국민을 잠재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헌법이 추구하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WHO 의결의 의미는 단순한 통계나 건강 상태를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며, 이를 넘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질병으로 진단하거나 혹은 이를 위한 증세를 획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 회장은 "이번 WHO의 의결은 그 해석과 집행에 따라서는 게임과 관련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만일 게임의 과몰입 현상을 '중독'이라는 질병의 틀에 넣고 국가의 보호대상이나 후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 이념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국민이 어떤 게임을 선택할지, 자신이 선택한 게임에 대해서 얼마 동안 즐길 것인지,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의 포기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등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권 내지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새로운 '질병'으로 분류하고 통제를 가하는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특히 질병으로 분류해 의료행위의 대상, 치료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중독성 환자(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강한 거부감을 고려할 때, 자칫 개인들(청소년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기록을 남겨둘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고 꼬집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는 542만9550명이다. 이 가운데 87.9%에 달하는 477만2574명이 게임을 이용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임 회장은 "WHO의 말대로 3%만 진단을 받더라도 무려 14만3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정신질환 '꼬리표'를 달게 되는 셈"이라며 "보건복지부도 이번 결정으로 추후에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이머는 전체 게임인구의 1-2%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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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 인터넷 중독에 대한 질병코드를 신설하고 각종 관리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정신건강 종합대책에 따르면, 영유아 단계에서는 인터넷·스마트미디어 사용 정도에 대해 선별검사를 진행하고, 부모 대상 적정사용 등 교육 홍보를 한다. 초·중·고교에서는 스마트폰 중독 조기 선별검사를 진행하며, 대학생에게는 인터넷 게임 예방교육 및 선별검사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교육기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인터넷·스마트폰·게임에 대한 중독 여부를 검사해 국민을 선별하고, 혹시 위험군으로 분류되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에서의 치료를 받게 한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이러한 제도의 섣부른 도입보다는, 개인이 게임이라는 여가활동 내지 직업활동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고, 다소 활동이 과잉되는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치유방법을 찾고 이것이 다시 게임문화에 피드백되는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중독'이라는 의료적 질환으로 인정하고 타율적인 통제의 수단을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WHO가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임을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digital gaming or video gaming)'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상이 되는 게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게임에 있어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각종 오프라인 게임은 아무리 몰입돼도 규제 대상이 안되고, 디지털게임이나 비디오게임만을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결과적으로 특정 온라인게임 혹은 특정 국가의 국민들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나아가 인터넷게임이 어떤 형태의 인터넷게임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명시하지 않고 있어 교육적 게임이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영역, 최근 4차산업구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VR, AR, AI 등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이 확대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약 8조 9145억 원)로 과반(56.6%)에 달한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등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6.8%)보다 8배 이상 큰 수치다.

또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WHO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2022년부터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하게 되면 게임 산업이 위축돼 향후 3년 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임 회장은 "최근 AI, VR, AR, 자율자동차 등이 모두 게임의 원리에 기초한 인터액션을 기본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국내 도입과정에서 규제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범위는 게임산업 뿐만 아니라 IT산업, 나아가 제조업 등 전체산업분야에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직접적인 규제 뿐만 아니라, 산업종사자들이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따른 위축효과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번 WHO의 게임 질병화 의결로 인해서 조만간에 국내에 도입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6월중 관계부처, 법조계, 시민단체, 게임분야,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구성을 추진한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민관협의체에서 국내 현황과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문제를 비롯해 관계부처 역할과 대응방향 등에 대해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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