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순민 칼럼] ‘기생충’의 냄새는 어떨까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9 17:31

수정 2019.05.29 19:21

봉준호 칸수상작 국내 개봉
양극화 문제 예리하게 그려
한국 팬에게도 통할지 관심
[정순민 칼럼] ‘기생충’의 냄새는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은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면서 "이번 영화 '기생충'이 너무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개봉일(30일)을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시사회장을 굳이 찾아간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28일 서울 용산CGV에 마련된 총 6개관 1200여석의 좌석은 봉준호 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알려진 대로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쁘다거나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가치 판단이 영화가 할 일도 아니다. 봉준호 감독도 "굳이 양극화 같은 경제사회적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보고 싶었다"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느 정도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이 되느냐, 공생이나 상생이 되느냐 갈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봉준호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들어가는 키워드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계단이다. 영화 속에는 아찔한 높이의 계단이 연이어 나온다. 봉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에서도 계급갈등 문제를 꽤 진지하게 다룬 적이 있다. 전작에선 꼬리 칸부터 머리 칸으로 이어지는 계급 구조를 수평적으로 펼쳐보인 반면, 이번 작품에선 지하에서 반지하, 또다시 지상으로 끝없이 연결되는 계단을 통해 우리 사회를 상징화했다. 계단은 또 영화 후반부 섬뜩한 사건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공간인 반지하도 눈길을 끈다. 영화는 지상도, 지하도 아닌 이곳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드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침마다 취객이 방뇨를 하고, 커다란 곱등이가 수시로 출몰하는 이곳에는 자칫 잘못했다간 지하로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눅눅한 습기처럼 배어 있다. 이곳에 살면서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영화 '괴물'에서 괴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인물들이나 '설국열차' 속 꼬리 칸 사람들을 문득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또 빈부갈등을 넘어 가난한 자들끼리 일전을 불사하는 모습은 쓸쓸함을 더한다.

이번 영화에선 냄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냄새는 가난한 자와 부자를 가르는 일종의 경계 같은 것으로 작용하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냄새에 관해 주고받는 대화가 아슬아슬하다. 이는 또 예기치 못한 사건을 추동하는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영화를 예측불허의 공간 속으로 밀어넣는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는 사적이고 내밀한 곳까지 카메라가 파고든다"면서 "여기서 냄새는 아주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로 쓰인다"고 말했다.

개봉을 하루 앞둔 29일 현재 '기생충'의 예매점유율은 70%대를 달리고 있다. 이는 상업적 흥행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첫 수상작에 대한 국내 관객의 기대와 봉준호 영화에 대한 신뢰가 맞물린 덕분으로 풀이된다.
하기야 봉 감독의 영화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년)를 빼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아왔다. 지난 2006년 개봉한 '괴물'은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칸은 이미 과거가 됐고" 이제 남은 건 국내 관객과의 만남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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