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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희토류(稀土類), 중국의 경제 무기일까

뉴스1

입력 2019.05.31 11:14

수정 2019.05.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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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어떤 모임에서 박종우 삼성SDI 상임고문을 만났다. 그를 보자 문득 요즘 미·중 무역 전쟁에서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희토류(稀土類)가 생각났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끊어버리면 미국, 한국, 일본 등 전 세계의 전자산업계에 큰일 날 듯이 언론이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퍼듀대학에서 전자공학박사를 취득한 박 고문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과 삼성전기 사장을 지낸 베테랑 엔지니어이니 희토류의 기술 및 전략적 가치를 피부로 느낄 것 같았다.

“중국이 희토류를 미국을 혼내줄 무기로 쓴다는데, 희토류가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입니까?” 내 물음에 그는 “희토류는 전기전자제품을 잘 돌아가게 하는 음식물의 비타민 같은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그걸 무기화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걸요. 미국이 처음 희토류를 개발했고 광산도 많은데 추출할 때 어마어마하게 환경오염을 초래하니 광산을 닫고 수입해서 씁니다.
호주에도 희토류가 많이 나요. 미국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독점적 공급에 대해 연구했으니 대비책을 세웠을 겁니다.” 박 고문의 이야기는 아마 미·중 무역 전쟁이 파멸로 가는 걸 전제하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희토류 수출금지로 미국에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중국도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니 섣불리 무기화하지 못할 것이란 맥락일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이 정말 첨예하다. 적당한 선에서 하다가 그만둘 싸움이 아닌 것 같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보복관세와 화웨이 제품 보이콧으로 공격에 나서자, 중국이 으르렁거리긴 하지만 아직 효과적인 반격을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미국에 파는 중국제품이 미국에서 사오는 상품보다 훨씬 많으니 중국이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반격 무기로 만지작거리는 게 바로 희토류다. 언론보도를 보면, 이 희토류가 첨단 전자제품과 미사일 등 방위산업에 긴요한 소재이며, 중국이 전 세계 공급물량 80%를 차지하고 있어서 중국이 공급을 중단하면 미국은 물론 서방 세계의 전자산업이 타격을 받게 된다는 얘기가 주류다.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조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와 중국의 대표적 언론인 인민일보와 환구시보(環求時報)의 논조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시 주석이 지난 20일 장시성 간저우(江西省 赣州)에서 희토류를 소재로 자석을 만드는 공장을 시찰한 것은 상징적인 행동이다. 그곳에서 시 주석이 남긴 말은 미국을 향해 은근히 보복 메시지를 담았다.

"희토류 산업 발전 분야에서 중국은 희토류 자원의 국내 수요를 우선시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희토류 자원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정당한 수요를 만족시킬 용의가 있다 중미 양국은 산업 사슬이 고도로 융합돼 상호 보완성이 매우 강하다.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롭지만, 갈등이 있으면 모두 다친다.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이런 시 주석의 신호에 따르듯이 2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말을 인용 "그동안 세계 최대 희토류 공급 국가로서 중국은 개방, 협조, 공유의 방침에 따라 희토류 산업 발전을 추진해왔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에서 수출한 희토류로 만든 상품이 오히려 중국 발전을 억제하는 데 사용된다면 불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외적으로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환구시보도 한껏 노골적으로 희토류 무기화를 주장했다. 이 신문은 “미국은 중국에 희토류라는 카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사설을 게재하고 "미국이 대(對)중국 압박을 계속 높인다면 중국은 희토류라는 무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 머지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중국은 희토류를 경제무기로 쓴 적이 있다.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놓고 중·일 영해 분쟁이 터졌을 때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고, 일본 산업계가 폭등하는 희토류 값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2014년은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중국은 국제여론에 밀려 2015년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를 풀었다. 이 사태에서 내려진 일반적 평가는 희토류의 무기화가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가 몰랐던 것들, 그러나 중요한 소재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희토류가 그중 하나다. 영어 'rare earths'를 한자어로 직역한 말인데, 그냥 흙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주기율표상 비슷한 특성을 가진 17개의 원소를 통합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희토류는 광학 및 자성(磁性)의 특성으로 인해 현대기술에서 불가결한 소재가 되었다. 스마트폰, 전기차배터리, 풍력발전기, 컴퓨터, 광통신섬유를 비롯한 각종 통신장비, 레이저, 텔레비전, 정수기 기타 가전제품 등 전류가 흐르는 곳에는 다 희토류가 들어간다. 특히 슈퍼컴퓨터, 미사일, 인공위성 등 첨단 기술분야에도 희토류가 들어가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심지어 석유를 정유해서 휘발유 등 여러 가지 석유제품을 생산하는데도 희토류가 필요하다니 그 쓰임새가 정말 다양하다. 이런 성질을 보고 서구 언론에서는 희토류에 ‘산업의 비타민’이란 별명을 붙였다.


중국은 내몽고 등에서 많이 나오는 희토류를 자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위해, 그리고 전략적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해왔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북한이 국토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희토류 매장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희토류가 무기화되지 않는 선에서 미·중 무역 전쟁이 수습되기를 바란다.<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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