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영화 '어린 의뢰인'과 부모 자녀 체벌 금지법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6 12:59

수정 2019.06.10 11:07

'칠곡 아동학대 사건' 공동변호인단 이끈 이명숙 변호사 인터뷰
이명숙 변호사(나우리 재단) /사진=fnDB
이명숙 변호사(나우리 재단) /사진=fnDB

영화 '어린 의뢰인' 보도스틸 /사진=fnDB
영화 '어린 의뢰인' 보도스틸 /사진=fnDB

영화 '어린 의뢰인' 보도스틸 /사진=fnDB
영화 '어린 의뢰인' 보도스틸 /사진=fnDB


“진즉에 만들어졌어야 할 법이다. 체벌이 일체 금지돼야 한다.” 영화 ‘어린 의뢰인’의 소재가 된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의 공동 변호인단을 이끈 이명숙 변호사는 단호했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아동 학대가 근절되려면 ‘자녀를 때릴 수 있다는 문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법이 입법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23일 포용 국가 아동 정책의 일환으로 부모(친권자)가 훈육 목적으로도 자녀를 때리지 못하도록 민법(친권자 징계권)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찬반 여론이 팽팽하고,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체벌의 범위도 논의 대상인데 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고통은 학대일 뿐”이라며 "남의 아이를 함부로 때리지 않듯, 자기 자식도 똑같이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 아동 학대 근절 “어떤 체벌도 용서 안 돼, 사회적 인식 달라져야”

“아동 학대가 근절되려면, 어떤 체벌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강한 인식이 생겨야 한다. 체벌 부모에 대한 교육과 처벌이 이뤄지고, 형량도 높아지는 등 국가가 체벌 부모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시켜줘야 한다.”

실제로 친권자 징계권을 명문화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스웨덴 등 54개국은 이미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영국에서는 2014년부터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해도 징역 10년이 가능하다. 밥을 안 주거나 언어 폭력을 가하거나, 아픈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다 학대에 포함된다.”

이명숙 변호사는 1990년 여성 변호사가 10여 명밖에 없던 시절, 당시 늘어난 이혼 사건을 담당하다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30년 동안 아동과 여성 인권 사건 관련 피해자 무료 변호에 나서 주목할 성과도 거뒀다.

‘도가니 사건’때 공동 변호인단을 만들어 장애를 가진 피해자의 법정 진술이 일관되면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으며, 2008년 말 ‘조두순 사건’에서는 아동 대상 성폭력에 대한 음주 감형을 없애는 데 영향을 끼쳤다.

2013년 ‘의붓어머니로 인한 아동 학대 사건’때는 아동 학대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 특히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 사건’은 부산고등법원에서 아동 학대에 살인죄를 적용한 최초의 판례였다.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은 2013년 이명숙 변호사를 포함한 공동 변호인단이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사건’을 지원하던 중 피해자 소녀의 고모(현재 소녀의 새어머니)가 도움을 요청해와 함께 맡게 된 사건이다. 두 사건은 2013년 11월 30일 아동 학대 특례법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5년부터는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 아동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 “맞고 자란 판사, 체벌에 관대...아동 학대 형량 낮고 판사 따라 다른 판결 원인”

이명숙 변호사는 “칠곡 아동학대 사건’은 당시 가해자인 새엄마가 상해치사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상해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마지막 판결 선고까지 살인으로 죄목을 바꿔달라고 했으나, 사건이 발생한 대구 지역이 너무 보수적이었다.”

유교적 문화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기본적으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 피의자에 대한 형량이 낮고 판사가 성장한 환경이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맞으면서 자란 판사는, 체벌에 관대하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과 이야기해보면 맞고 자란 사람들이 많다. 부모가 된 지금, 아이를 때리는 판사도 더러 있다.” 이 때문에 체벌에 대한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숙 변호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새엄마가 아이를 학대했지만 실제는 친부모가 (학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새아버지, 새어머니에 의한 아동 학대는 4% 정도에 불과하다.

“어린이집 학대도 전체의 4%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 아이를 밀쳐도 징역 2년을 받는데. 친부모는 학대해도 무죄가 되거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10년 정도 나온다.”

아동 학대는 2014년 대비 1만 건, 4년 만인 2018년 2만 건으로 두 배나 늘었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는 곳은 가정이 80%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피해 아동의 70% 이상이 최소 1주일에 한번 이상 또는 그보다 더 자주 학대를 당했다.

“30년 동안 변호사 생활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이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정 내에서 사랑받고 건강하게 자라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시한폭탄이 만들어진다.”

■ “아이 때문에 살지 말고, 아이를 위해 이혼하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많이 봐온 그는 이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부모가 싸우면서 같이 살 거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다. 같이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모가 별거하거나 이혼해도 어느 한쪽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두려움이 없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정서가 불안하다.”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가해자인 새엄마의 강요로 어린 동생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했던 ‘다빈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됐다. 크나큰 고통을 당했지만, 고모가 친양자 입양한 후 사랑 속에 자라고 있다.

다빈이의 새 부모는 딸의 고통이 되살아날까봐 처음에 영화화를 우려했지만, 다빈이가 먼저 동의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 가족도 뜻이 같이했다.
'어린 의뢰인'은 내 주변의 아동 학대를 묵인, 방조하던 어른들의 반성문 같은 영화다.

이명숙 변호사는 “다빈이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며 “미술치료사가 돼 자신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해주고 싶어 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지난 3일부터 서초동 나우리재단 갤러리에서 다빈이가 그동안 그린 그림을 전시 중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