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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화웨이 딜레마, 기업 이익 해치는 일 없어야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6 17:03

수정 2019.06.06 17:03

사드 때 기업이 희생양
'제2 롯데' 되풀이 안 돼
한국이 화웨이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도 고민, 기업도 고민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일 한 강연에서 "신뢰할 만한 5G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앞서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주 한국 기자들에게 "한국 정부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한국이 샌드위치가 된 격이다.
몇 년 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이 불거졌을 땐 한국이 취할 입장이 비교적 또렷했다. 안보는 미국과 한 배를 타야 한다는 공감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웨이 딜레마는 경제 문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사드 때보다 더 힘든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이미 서방기업 여럿이 미국 편에 섰다. 인텔, 구글, 퀄컴 등 미국 회사는 물론 영국의 세계적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도 화웨이와 거래를 끊었다. 영국 통신업체 보다폰은 화웨이의 5G 휴대폰 개통을 중단했다. 이웃 일본의 파나소닉은 화웨이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우방인 한국도 이 흐름에 동참하라는 게 미국의 요구다. 그러나 한·중 경제 관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밀접하게 얽혀 있다. 다른 나라가 한다고 우리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 수출 가운데 27%가 중국으로 갔다.

사드 사태가 남긴 학습효과도 있다. 사드 배치 부지로 성주골프장을 내준 롯데그룹은 이후 온갖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오로지 롯데 혼자 손해를 감수했다. 기업들은 이 교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미국 편을 들면 중국이 성을 내고, 중국 편을 들면 미국이 화를 낸다. 이럴 땐 정부가 나서기보다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기는 게 최상이 아닌가 한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건 해당 기업이 제일 잘한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의 5G 통신장비를 일부 사용한다. 삼성전자는 화웨이가 바이어(반도체)이면서 동시에 경쟁자(통신장비)다. 화웨이 딜레마를 풀 해법을 놓고 누구보다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주에 소집한 반도체 사장단 긴급회의에서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며 "삼성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이미 판단이 선 듯하다.
정부는 대내적으로 기업 판단을 존중하면서 대외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힘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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