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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맥주 종량세를 지켜보며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6 17:26

수정 2019.06.06 17:26

[여의도에서]맥주 종량세를 지켜보며

수입맥주가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어느 신용평가사 관계자에게 물었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편의점에서 어떤 맥주를 사시나요? 전 4캔에 1만원 하는 수입맥주를 삽니다. 국산맥주보다 맛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정답같이 보이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 훌륭한데 왜 이제야 빛을 보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문제다.

사실 수입맥주는 소비자에게 사치품 같은 존재였다. 거기서 거기라는 오명을 받아온 국산맥주보다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담 없이 사기에는 가격대가 높았다.
500mL 캔 하나에 3000원을 훌쩍 넘는 수입맥주를 사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름도 어려웠다. 아사히, 기네스는 그래도 귀에 익었지만 파울라너, 필스너우르켈, 스텔라, 블랑 등등 쏟아져 나오는 글로벌한 맥주들은 그 어렵다는 와인과 동급의 낯설음을 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첫 수입맥주는 대형마트에서 구매했다. 1캔에 1500원이 안됐던 이름 모를 맥주였는데 뭔가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맛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결국 '소맥'용으로 처리했고, 그 이후로도 수입맥주는 저렴하게 사서 소주와 섞어 먹는 그저 '소맥용 맥주'였다. 기존에 콧대 높았던 어려운 수입맥주들이 4캔에 1만원으로 몸값을 낮출 때까지는 계속 이런 패턴이었다. 수입맥주의 대중화 바람에 휩쓸렸던 것이다.

수입맥주가 단기간에 대중화된 것에 대해 맥주업계에서는 '가격파괴'를 가장 큰 이유로 든다. 국산맥주보다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한 맥주업계 관계자는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맛이 좋다고 하면서도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1·2위 제품은 평범한 라거계열 맥주"라며 "소비자들의 수입맥주=고평가와 국산맥주=저평가가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국산맥주 역시 청량감을 내세운 라거계열인데 수준 차이를 논할 정도의 품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반격의 초점은 가격에 맞춰진다. 수입맥주에 유리하고 국산맥주에 불리한 세금체계를 개편해 양쪽이 동등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국산맥주 업계의 숙원사업인 종량제 전환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것도 아니고, 실제로 지난해에는 제도화 직전 무산되기도 했다. 올 들어서도 4월 발표설, 5월 연기설 등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끌다 보니 수입맥주들이 더더욱 힘을 받았다. 4개 1만원으로 국내 맥주시장에 안착한 데 이어 요즘은 '8개 1만5000원'이라는 충격적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기다린다. 병과 캔제품을 넘어 생맥주까지 출시하며 영역 확대에 나섰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브랜드 론칭도 잇따른다. 심지어 국산맥주의 아성(?)인 '소맥'용 맥주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나선 제품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수입맥주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기다리던 맥주 종량세 도입의 로드맵이 나왔다. 앞으로 대다수 수입 캔맥주의 세금이 올라가고, 국산 캔맥주의 세금은 내려가게 된다. 국산맥주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무기가 생긴 셈이다.
이 말은 곧 가격 때문에 수입맥주에 밀리고 있다는 하소연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다는 것과 같다. 종량세 때문에 줄어드는 세금 가지고 이익을 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국산맥주 업체들의 일성은 의미심장하다.


이번 주세개편이 국산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생활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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