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낙수도 분수도 없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와 분수효과(Fountain Effect)의 차이는 흔히들 돈의 흐름이 반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 유행하듯이 편을 가른다면 경제 내 기업과 가계만 있다고 볼 때, 낙수는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면 고용과 봉급이 늘어 가계의 소득도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분수는 가계의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를 통해 기업의 실적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또 편을 가른다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동일한 구조를 가진 돈의 흐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둘 다 도는 방향은 같다. 기업에서 가계로, 가계에서 기업으로, 그렇게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즉 핵심은 어느 것이 먼저냐다. 기업이나 고소득층이 많이 벌어야 가계나 저소득층이 잘된다는 쪽이 성장론자들의 낙수이고, 그 반대가 분배론자들의 분수이다.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두 주장은 위쪽과 아래쪽 간의 명확하고 보편적인 인과 경로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에 그런 것은 없다.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가설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주장은 자신들의 정책을 따른다면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좋아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경험적 분석은 대체로 통계학적 유의성을 가지지 못한다. 성장이나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성장은 성장이고, 분배는 분배일 뿐이다. 성장의 결정요인은 시대적 대내외 경제 상황 그리고 시장이 주도하는 효율적 자원배분과 산업의 생산력이다. 분배의 결정요인은 제한된 파이를 누구에게 더 나눠줄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 또는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의 정치성향이다. 어느 한쪽의 요인이 다른 한쪽의 요인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더구나 윗물과 아랫물 간의 순환 규모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직관적 추정에 크게 못 미친다. 낙수를 주장하는 성장론은 고소득층이나 기업을 너무 선하게 본다. 돈에는 도덕이 없다. 권위를 인정받아 한쪽에서 빼앗아 다른 한쪽에 줄 수 있는 약탈적 행위가 있어야 낙수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형 분배론인 '소주성'에서 말하는 분수는 경제학을 날림으로 배운 사람들의 허상이다. 그들은 저소득층의 높은 소비성향에만 주목할 뿐 계층 간 소비의 절대규모 차이, 저소득층의 부채구조, 국내 소비재산업의 외화가득률 및 수입침투율 등에 따른 '분수의 누수(漏水)'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예상컨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경제가 좋아지는 때가 오더라도, 그것은 지금의 경제 상황이 너무 나빠서, 더 나빠질 것이 없기에 좋아지는 것이지 '소주성'의 결실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소득 양극화가 뚜렷한 개선 조짐을 보인다면 그것은 성장의 과실인 낙수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사회보장시스템이 확충됐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낙수나 분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솔직해지고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성장과 분배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능력도 없으면서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억지스러운 논리를 설교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어설프고 딱해 보이는 가설로 사람들을 그만 현혹했으면 한다. 성장은 성장이고, 분배는 분배다. 물과 기름인데, 둘 사이에 자꾸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 말자. 그럴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질 뿐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