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칼럼]

핀란드가 사는 법

강대국과의 유연한 외교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경제
작지만 강한 나라 만들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독서광이다. 그는 매년 자신이 직접 고른 '올해의 책' 목록을 발표한다. 올해도 지난달 말 다섯 권의 책을 추천했다. 이번 목록에는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을 비롯해 폴 콜리어의 '자본주의의 미래', 마이클 베실로스의 '전쟁 대통령',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 로즈 조지의 '나인 파인츠' 등이 포함됐다. 이 중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이 이제 막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이번 책에서 다이아몬드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한두 번쯤은 개인적으로 격변이나 위기를 맞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혼, 실직 같은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국가적 차원의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 위기는 국가적 변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핀란드의 경우를 사례로 든다. '노키아의 나라'로만 알려진 핀란드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굴곡진 역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1944년 핀란드는 두 차례 구 소련의 침공을 받는다. 소위 '겨울전쟁(Winter War)'으로 불리는 소련·핀란드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핀란드는 전 인구의 2.5%가 사망하고, 영토의 10%를 소련에 내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당시 약소국 핀란드를 돕는 이웃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때 핀란드가 선택한 위기극복 방안은 '국익우선'이었다. 국익을 위해선 그 어떤 수모도 견뎠다. 강대국 소련의 신뢰를 얻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 아래 조금은 굴욕적이지만 매우 유연한 '줄타기 외교'를 통해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는 운명을 되돌려 놓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개의 핵심가치를 지켜내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핀란드는 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강소국가로 발돋움했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3개국을 국빈 방문 중이다. 문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오타니에미 혁신단지를 방문한 데 이어 이튿날에는 헬싱키에서 열린 한·핀란드 스타트업 서밋에 참석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핀란드는 이른바 '노키아 쇼크'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는 나라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키아의 전 세계 휴대폰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었다. 이들이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0%에 달했다.

그러던 노키아가 2010년대 초 모바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노키아의 위기는 곧 핀란드 경제의 위기를 뜻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이때 핀란드 정부와 노키아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브리지 프로그램'이다. 대량해고에 직면한 직원들을 그냥 사회에 내보는 대신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과 전직을 도왔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 '신의 한 수'가 지금의 스타트업 열기로 이어진 셈이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있게 마련이다.
다이아몬드는 이번 책 출간에 맞춰 영국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위기는 과거에도 국가를 곤경에 빠뜨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첫걸음은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이 위기상황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선택과 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물론 한국에도 적절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