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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한국산업 '돈 버는 기계'로만 머물 것인가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8 17:19

수정 2019.06.18 17:19

[여의나루] 한국산업 '돈 버는 기계'로만 머물 것인가

한국 산업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인 지 이미 오래됐다. 필자만 하더라도 작년 이후 몇 차례나 글을 쓰고 세미나에 참석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도 언급되어 조금 진부해져버린 숫자이지만 한국 산업의 위기 상황은 곧잘 부진한 수출로 대변되고 있다. 올 4월까지의 누적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6.9%나 줄었다. 그보다 더 우리 산업상황을 어둡게 느끼게 하는 점은 한국 산업이 자랑하는 IT분야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년 같은 기간에 19.8%나 감소한 반도체를 필두로, LCD와 무선통신기기부품도 각각 11.1%, 34.8% 감소라는 참담한 수출성적을 보였다.
IT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도 그다지 자랑할 만한 성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한국 산업 전체의 위기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겠다.

서두가 조금 길어져버렸지만 이런 우리 산업의 경쟁력 위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필자는 한국 산업의 진로를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얼마 지난 뒤에 수출이 회복되기 시작하면 한국 산업은 미래의 갈 길을 찾게 되는 것일까? 속된 표현을 동원한다면 한국 산업은 해외로 나가서 '돈만 잘 벌어오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

이렇게 한국 산업의 위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와 기업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 왔고, 수출시장을 확보하는 노력이 또한 중요한 통상외교정책의 목표가 되어 왔다. 이른바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핵심이 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맞춰져 있었던 셈이다. 이런 방향으로의 정부와 기업의 노력들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돌려서 새겨보면 결국 산업은 '돈 버는 기계'로만 간주되어 온 셈이라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산업혁명을 통해 나타난 과거의 산업들을 되돌아보아도 그렇고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새로운 산업들을 보아도 그렇지만 산업이 단순한 '돈 버는 기계'로 취급받는 데 그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닐까 싶다. 세계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산업들은 인류의 미래를 열기도 하고, 적어도 세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해 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지금부터라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좀 더 깊이 성찰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나라가 당면하기 시작한 심각한 문제들, 이를테면 환경보호, 안전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들을 푸는 데 우리 산업들이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 산업들이 '돈 버느라고' 이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역할만 해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다음으로 우리 산업들도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들을 활용해서 세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열어가는 역할을 조금씩 모색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선진국 산업들이 그렇게 열어놓고 검증해 놓은 시장에 후발자로 참여해 높은 제조경쟁력을 무기로 '돈을 벌어가는' 산업들로만 비친 것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산업들만큼 국력을 쏟지 않았지만 오히려 세계적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열어가는 문화계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나아가 한국 산업은 우리 경제생태계를 튼튼히 하는 데도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데만 집중하느라 국내 경제생태계를 키우는 일은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을 우리 주력산업들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산업들로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우리 산업들도 처음으로 사랑받게 될지도 모른다.

김도훈 서강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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