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제 양극화가 갈등 키웠다" [새로운 100년, 리스타트 코리아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0 18:39

수정 2019.06.20 18:39

내 집단이 아니면 '敵' 서로 벽만 쌓는 대한민국인
국민 90% 주요 갈등 원인으로 '경제적 문제' 지목 
높은 실업률이 청년/기성세대, 남/녀간 대립 키워 
의무·책임 그대로인데 사회적 배려 못 받는다 느껴 
"경제 양극화가 갈등 키웠다" [새로운 100년, 리스타트 코리아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한국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다. 사용자와 노동자, 남자와 여자, 청년과 기성세대 등으로 사분오열 쪼개져 있다. 온·오프라인 공간 할 것 없이 서로 간에 혐오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단 간에 불신과 반목이 팽배해진 주원인을 '얼어붙은 경제'로 꼽았다.

■갈등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20일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에 따르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2018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90%는 '우리 사회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사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 법정근로시간 단축 이슈가 있었다. 파급력 긴장도가 강하게 인식이 됐다"며 "최근 경제적 양극화가 강화되고 근로자, 자영업자 모두 경제적 여건에 민감하다 보니 서로 간 갈등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주요 갈등의 공통적인 원인은 '경제적 문제'다. 빈부격차(2위),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4위) 등 악화된 경제상황이 저변에 깔려 있다. 높은 실업률을 놓고 '열정이 부족해'라는 기성세대와 '시대가 다르다'는 청년 간의 경제적 시각차는 신구 갈등으로 이어진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화시대 청년에게 크게 의존하던 것과 달리 현재는 청년이 사회에 진입하는 기회가 줄었다"며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생활이 안정된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직업관이나 삶의 태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구인난에 처한 기업에 가보라고 청년에게 권유하는 정책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고 했다.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민사회가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교육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정치교육인 '보이텔스바흐'협약을 들었다. 오 위원은 "이 협약은 절대로 남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조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며 "수평적 문화, 서로 협력하는 문화는 서로의 독립적 판단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전했다.

■높은 실업률이 남녀 갈등 부추겨

얼어붙은 경제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의 갈등뿐 아니라 남녀 갈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앞서 '2018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 조사에서 2017년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건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었다. 여론조사기관 인사이트케이 배종찬 연구소장은 높은 실업률을 남녀 갈등의 이유로 꼽았다. 배 소장은 "20대 여성은 사회적 진출에 차별이 있다고 주장하고 20대 남성은 자신 세대에선 양성평등이 실현돼 오히려 취업에 불리함을 겪는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20대 남성의 경우 과거 남성이 유리하던 시대가 지났다는 상대적 박탈감, 군복무로 인한 학력단절을 겪으며 정부가 추진하는 양성평등사업을 역차별로 인식한다. 군복무가 없는 여성이 취업과 사회진출에 더 유리하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녀 갈등은 정부 임기 내 이뤄지기도 어렵다. 극복 방안은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며 "남녀 갈등을 사회가 적극 문제로 인식하고 공론화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젠더 담론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남녀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대가 달라졌으나 남녀 문제는 예전과 같은 잣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젠더 갈등을 풀어내는 데 가장 큰 고민은 남성들이 자기역할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남성에게 모든 전권이 부여된 가부장사회와 달리 20대 남성의 경우 실업률이 높고, 취업이 되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위축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양성평등성 문제는 그들에게 더 큰 압박감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남녀 갈등의 해결 방안으로 여전히 여성의 불평등만을 강조하는 70, 80년대 여성학만을 제시하고 있어 20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김 평론가는 "20대 남성의 경우 해야 할 의무와 책임감은 그대로인데 사회적으로 배려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정도가 심한 경우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극단적인 커뮤니티로 흘러들어가게 된다"며 "미디어에서도 남녀 간에 싸움을 붙이는 방향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 갈등관리법 필요"

전문가들은 갈등 관리를 위한 기본법 제정과 독립적인 갈등 해소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에서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관리할 체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미국에는 대안적 분쟁해결제도인 행정분쟁해결법(ADRA)과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NRA)이 1996년 제정됐다. 일본도 ADR 기본법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대통령령인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 뿐이다. 이강원 소장은 "한국은 공공정책 관련해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체계적으로 갈등을 관리하고 대응할 근거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갈등관리기본법 정도만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구속력이 떨어지다 보니 대응하는 게 역부족인 것 같다"며 "법제화를 통해 정부의 책무를 높이는 게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용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