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고무도장 거부한 한전, 정부가 뒤엎지 마라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3 17:11

수정 2019.06.23 19:06

관련종목▶

이사회서 전기료 할인 보류
주주가치 훼손하는 일 없길
한국전력 이사회가 지난주 여름철 전기료 인하안을 보류시켰다. 이례적이다. 한전은 정부 지분이 51%가 넘는다. 국책 KDB산업은행이 32.9%, 기획재정부가 18.2%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전 이사회는 통상 정부가 결정하면 이를 추인하는 고무도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8월 여름철에 요금제 누진 구간을 넓혀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는 안을 마련했다. 이렇게 하면 한전에 2850억원 손해다. 그러자 이사회는 정부안에 제동을 걸었다.

한전 이사회가 반기를 든 배경은 뭘까. 먼저 배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앞서 한전 소액주주들은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할인안이 통과되면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흘려들을 수 없는 경고다. 한전은 올 1·4분기 영업적자만 6299억원을 냈다. 이런 회사가 추가 손실을 수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시장이 사외이사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예전처럼 거수기라고 봐주지 않는다. 회사 이익을 해치는 결정에 동조하면 책임을 묻는다. 15인 한전 이사회는 사내 상임이사 7인, 사외이사 8인으로 구성된다. 특히 사외이사들에겐 정부보다 시장과 법원이 더 무섭다.

이번 사례는 그동안 공기업을 봉으로 취급해온 정부 정책에 경종을 울린다. 이명박정부는 자원외교와 4대강,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만만한 공기업을 동원했다. 해당 공기업들은 정권 사업 하느라 경영이 엉망이 됐다. 문재인정부는 이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불똥이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튀었다. 한전은 조 단위 이익을 올리던 알짜 기업에서 순식간에 적자 회사로 굴러떨어졌다. 정부는 이런 회사의 팔을 다시 비틀고 있다.

이런 반시장적인 관행은 그만둘 때가 됐다. 한전은 엄연한 코스피 상장사로 시가총액 17위에 올라 있다. 3년치 주가 흐름을 보면 추세적인 하락세다. 게다가 한전은 국민연금 지분도 7.19%나 된다. 그러니 한전 실적이 나쁘면 국민연금 수익률도 나빠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한여름 전기료 인하라는 생색을 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전기료 인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격이다.

한전 영업본부장은 이달초 전기료 개편 토론회에서 "한전은 뉴욕증시 상장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귀에 거슬려도 이 말이 진실이다. 한전 이사회는 곧 임시회를 소집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압력에 맥없이 무너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 전에 정부가 전기료 개편안을 철회하면 금상첨화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