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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노동개혁 못하면 설익은 선진국 함정 빠진다"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3 18:06

수정 2019.06.23 18:06

사공일 세계경제硏 명예이사장에게 듣는다
文정부 소주성 실체 모르겠다
최저임금제는 사회안전망..거시경제정책으로 될 수 없어
소득격차 늘리는 건 기술변화..재정지출 확대는 근본책 안돼
생산적 일자리 만들고 근로자 훈련·교육체제 고쳐 가계소득 늘리는 게 최선의 복지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영동대로 무역센터에 위치한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경제상황과 향후 대응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영동대로 무역센터에 위치한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경제상황과 향후 대응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성장잠재력 향상.' 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향성이다. 그런데 식상하지 않다. 누구나 얘기하는 방향성에 구체적인 담론을 담아 제시한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경제석학으로 통하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명예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향상을 위한 우선과제로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을 꼽았다.
사공 이사장은 "그동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노동개혁을 제대로 하려 했던 정부는 없었다"며 우리 노동시장의 큰 문제는 노사(勞·使)관계가 노정(勞·政) 관계화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체제를 위한 교육개혁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영동대로 무역센터에 위치한 IGE 사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공 이사장은 현 경제 상황과 향후 대응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제시했다. 사공 이사장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에 대해선 "나는 아직도 그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제는 시장경제 체제를 일부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인데, 이를 거시경제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담=곽인찬 논설실장

―미·중 통상마찰이 진행 중인데, 이들은 왜 싸우는 것인가.

▲표면상 무역전쟁으로 보이나 실제 미·중 통상마찰은 미·중 패권 전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미·중 갈등의 핵심을 보면 기술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기술은 기업·산업 경쟁력과 직결되지만 패권국이 되기 위한 군사력 확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미·중 갈등은 통상분야뿐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형태로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화웨이 제재 여부를 놓고 한국 기업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원칙적인 얘기만 하겠다. 앞으로 지속될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여건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작은 나라인 우리는 우선 정부가 원칙 있고 일관성 있는 전략에 기초한 외교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우리 기업의 국내외 경쟁기업과의 관계 등 기업의 속사정을 잘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 측 우려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중국과의 이해관계를 국제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살펴보겠다. 경제성장률이나 수출 모두 하향세다. 이유는.

▲장·단기 두 차원으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 먼저 단기 경기순환적 측면에서는 미·중 무역갈등과 함께 국내정책 실패를 주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긴 안목에서 보면 우리 국가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근본적 약화를 들 수 있다.

―성장잠재력 향상은 어떻게 하나.

▲우선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서 기업투자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경제체제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법과 각종 제도와 함께 시대에 맞지 않는 모든 규제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소홀히 하고, 앞에서 지적한 교육과 노동개혁에 실패한다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우리나라는 '설익은 선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의견은.

▲나는 아직도 그 실체를 모르겠다. 실체를 확실히 이해 못했다. 최저임금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구조조정 과정에 수반되는, 시장 실패를 일부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다. 이를 거시경제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시장경제 체제의 시장 실패 보완용으로서, 사회안전망 제도로는 바람직하지만 거시경제정책 수단으로 쓰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

―국가 채무비율 40%를 지키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 많다.

▲40%가 철칙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주요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책담당자들이 벤치마크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일종의 룰(rule)화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조돼야 할 사실은 중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사실상의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오랜 기간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서 엔화를 가진 일본을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외환위기 걱정이 없다.

―중소개방형 경제 특성상 우려할 부분이 크다는 것인가.

▲그렇다. 무역 및 금융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재정건전성을 등한시하는 정부의 기본자세와 정책방향 자체가 국제금융시장에 부정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약력 △79세 △경북 군위 △서울대 상과대학 △미 뉴욕대 교수 △한국개발원(KDI) 부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재무부 장관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G20 정상회의준비위원장 △한국무역협회장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현)
■약력 △79세 △경북 군위 △서울대 상과대학 △미 뉴욕대 교수 △한국개발원(KDI) 부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재무부 장관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G20 정상회의준비위원장 △한국무역협회장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현)

―소득불균형에 따른 복지지출로 40%룰을 깰 수 있는 것 아닌가.

▲소득격차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근본대책과 함께 일부 보완책으로 재정지출을 늘릴 수 있다. 소득격차를 늘리는 주요인은 빠른 기술변화다. 기술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그 결과 소득격차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일부 복지지출을 늘릴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런 단기 대응정책은 생산적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의 훈련·재훈련 및 교육체제 개혁과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생산적 일자리를 통해 가계소득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복지정책 아닌가. 따라서 이런 장단기 대책이 함께 추진될 때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적 시각과 평가가 달라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 정책을 조언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이 돼야 한다. 인문·이공 전공분야를 포괄하는 창의력과 융합형의 인재를 키워야 한다. 교육제도와 교과내용도 바꿔야 한다. 기존의 4년제 대학도 평생교육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자기 평생에, 예를 들면 10여번 바꿔야 한다면 노동시장 유연성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청년실업난도 교육개혁 필요성과 연결되나.

▲대졸자 청년실업은 교육받은 인력의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와도 물론 관련이 있다. 대학에서 길러내는 인재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의 격차와 대졸자의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학제와 교과내용 등 교육개혁과 연결이 된다.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직장을 몇 번 바꿀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력과 융합형 유연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노동개혁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어느 정부가 이 시대에 요구하는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해 노력했느냐고 묻고 싶다. 현 정부는 독일 노동개혁을 사민당 정부가 해냈던 사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진보 성향의 정부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어려운 노동개혁에 앞장서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노동개혁을 하려면 이제 국회의원들도 생각을 바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당신 아들과 손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설득해야 한다.

―최저임금위가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심의에 들어갔다. 동결과 인상 목소리가 혼재돼 있다.

▲우리나라 노사문제는 노정문제다. 노사 간 해결해야지 노정이 되니 정치적 결정이 된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객관적 분석을 기초로 한 통계자료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정 간 타협으로 거시경제적 차원의 충분한 검토 없이 이뤄진 결정은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국제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 한마디 더 한다면.

▲다음 세대를 진정 걱정하고, 일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다지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미래 지향적인 노동시장 개혁과 교육개혁에 우선순위를 둔 국정운영을 해나가기 바란다.

정리=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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