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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日 경제보복에 유연한 대응을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04 18:01

수정 2019.07.04 18:01

[여의나루]日 경제보복에 유연한 대응을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됐다. 더 강력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지난해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폭풍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법원 판결에 아쉬움이 있다. 일본 전범기업들은 일제 치하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준엄한 결론에 박수치지 않을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2012년 손해배상을 최초로 인정한 대법원 소부 주심이었던 김능환 대법관은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는 말을 남겼다.
대법원 판결도 이처럼 감성을 앞세운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결론을 존중은 하지만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권순일·조대연 대법관의 반대의견에서 보듯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다양한 해석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애초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이었다. 박정희정부는 1975년 징용 피해 사망자 유족에게 1인당 30만원씩 총 91억원을 보상했다. 청구권 자금을 받은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행동이었다. 1990년대 징용소송이 쟁점화되면서 정부는 1995년 "개인 청구권이 인정된다"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노무현정부는 2005년 다시 입장을 정리했다.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외에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것이다.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최대 2000만원씩, 6만7000여명에게 54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책임을 온전히 인정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게 노무현정부였다. 대법원 판결은 우리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개인의 재산적 청구권이 아니라 인권 차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평이야 가능하지만 지금 와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은 소용없다.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비판도 의미 없다. 정부, 사법부, 국민이 생각하는 국익의 개념이 다를 수 있다. 일본을 비난하면 속이야 시원하지만 결국 멍드는 건 국익이요, 골병 드는 건 우리 경제다. 대법원 판결 후 일본의 보복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문재인정부는 강제징용 판결 후 예상되는 후폭풍을 고려한 사법부와 박근혜정부의 움직임을 사법농단으로 단죄한 바 있다. 문제는 반일감정만 자극했을 뿐 구체적이고 실효적 대응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법원 판결과 달리 정부는 국익을 우선하는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 불만족스럽지만 일본의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게 사실이다. 우리 정부와 수혜기업들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일본에 전달해야 한다. 노무현정부가 이미 실천한 해법을 따르는 것으로 정치적 부담이 큰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이미 제안한 양국 기업 공동책임론도 큰 틀에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우리 정부가 '이에는 이'식의 '강력대응' 기조를 택하지 않은 것은 긍정적이다. 일본의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더 큰 국익을 위해 일본도 받아들일 수 있는 협상안을 마련, 물밑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일본 기업도 타격이 가는 제재이므로 일본도 오래 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때를 대비해 빨리 우리 측 입장을 정리하고 협상 준비를 해야 한다. 아베정부의 무도한 조치는 곧 있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서라고 한다.
우리 정부가 선거보다 중요한 국익을 의식한다면 감정적 대응이 아닌 실질적인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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