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스토리 칼럼] 싸가지 없는 보수

뉴시스

입력 2019.07.07 05:30

수정 2019.07.07 12:05

김호경 정치부장
김호경 정치부장

【서울=뉴시스】김호경 정치부장 = 강준만 교수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은 도발적인 제목 만큼이나 한동안 진보 진영에 뜨거운 화두를 던졌고 보수 진영에서 진보를 공격할 때 즐겨 인용되기도 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이다. 반대편 세력의 어떤 행위에 의분을 느낄 때는 싸가지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나아가 싸가지 없이 내지르는 게 지지층에게는 후련함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와 선거가 '20퍼센트가 결정하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에선 대체로 보수-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각자 30퍼센트씩 존재하는데, 이들 고정 지지층은 웬만해서는 표심을 바꾸지 않는, 그야말로 요지부동 세력이다. 나머지 40퍼센트 중 20퍼센트는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할 생각이 없는 또 다른 요지부동 세력이다.


나머지 20퍼센트 유권자는 그 어느 쪽에 분노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보수의 분노'나 '진보의 분노' 내용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의 분노 표출 방식, 즉 태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다. 바로 여기서 싸가지가 문제가 된다는 게 강 교수 글의 핵심이다. 강 교수는 미국 정치학자 엘머 E. 샤츠슈나이더의 다음과 같은 고전적 진술을 인용한다.

"모든 싸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싸움의 중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소수의 개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광경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구경꾼들이다. 구경꾼은 일반적으로 소수의 싸움꾼들보다 몇백 배나 많기 때문에 놀랄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갈등이든 그것을 이해하려면 싸움꾼과 구경꾼의 관계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일은 대개 구경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야 간에 격한 공방이 벌어졌을 때, 어차피 논쟁을 통해 상대 진영을 설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중요한 건 논쟁의 구경꾼들에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적인 구경꾼들은 논쟁의 콘텐츠에 관심을 갖겠지만, 일반 유권자 수준의 구경꾼들은 태도나 싸가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즉, 싸가지라고 하는 형식이 내용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강 교수가 이 책을 냈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의 전신)의 최대 약점이 바로 싸가지 문제였고, 고질적인 '싸가지 결핍증'이 결국 대선, 총선,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강 교수는 집요하게 논증했다. 이를 두고 "아군에 총질하기" "진보 죽이기를 위한 교묘한 음모론" 등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쓴 약으로 작용해 이후 개과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중적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이를 변용해 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싸가지 없는 보수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이미 총선, 대선, 지방선거 참패를 겪은 보수 정당이 현재의 행태를 반복할 때 민심이 어떻게 반응하고 이제 9개월 밖에 남지 않은 총선 전망이 어떻겠는지 말이다.

우선 '싸가지 없는 보수'라는 개념은 타당한가. 과거에도 물론 보수 정당발(發) 막말 사건은 존재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지속적으로 여러 인물에 의해 봇물 터지듯 남발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필자가 국회를 처음 출입한 때는 신한국당에서 이른바 '9룡'(이회창·이수성·이홍구·김덕룡·최형우·이한동·김윤환·이인제·박찬종)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이들 걸출한 대선주자급 인사들은 일거수일투족이 늘 주목을 받았지만 상식 밖의 막말로 질타를 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인물 탓인지, 구조와 환경 탓인지 규범과 품격을 중시한다는 보수의 대표 정당에서 요즘은 문제적 언행들이 일주일이 머다하고 분출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이런 행태가 문제인지조차 아예 진지하게 인식을 못 하고 오로지 청와대 탓, 여당 탓, 언론 탓에 심지어 여론 조작 탓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5·18 망언' '세월호 망언' '반민특위로 국민 분열' '저 딴 게 무슨 대통령' '다이너마이트로 문재인 청와대 폭파' '문재인은 지진아, 빨갱이' '달창' '한센병'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 '천렵질' '피오르 해안 관광' '부부가 쌍으로 왜들 이러시나' 'XXXX야, X 같은 XX야, 꺼져'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어떤 면에서는 김정은이 더 나은 지도자' '외국인에 똑같은 임금은 불공정' '아들 스펙 거짓말' '여성당원 행사 엉덩이춤' 등등.

물의를 빚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한국당은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는 법이 드물고 "아무것이나 막말이라고 하는 그 말이 바로 막말"이라는 식으로 반박해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붓곤 한다. 사과가 아닌 항변을 하고, 논점을 일탈한 채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보니 "낮은 점수를 높게 얘기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반대도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느냐"는 자충수까지 보탠다.

황교안 대표가 엉덩이춤 퍼포먼스 바로 다음날 "언론이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 좋은 메시지를 내놓으면 하나도 보도가 안 되고 실수하면 크게 보도가 된다"고 주장한 건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조중동'도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펼치며 언론 보도에 총체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일상적으로 대통령과 정부·여당 비판에 열중하는 언론들로서는 한국당의 이런 인식이 더욱 황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당 지도부는 기이한 피해의식에만 젖은 채 뒤틀린 언론관을 날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당은 으레 언론의 편향성을 탓하며 '프레임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공식처럼 정형화해 있다. "야당 입을 막는 프레임"이라는 게 거의 입버릇 수준이다.

가령 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편파적인 극우 막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도를 넘어도 지나치게 넘었다"라면서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이며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민주당과 일부 민노총이 장악하는 언론사, 민주당 정보원이 있다는 네이버 포털 공동작품"이라며 "지금 한국당 막말 정당 프레임 키우기에 모두들 혈안이 됐다"라고 했다. 또 "언론은 편향적으로 보도하고 포털은 확대재생산 한다"라며 "결국 반정부, 반권력 목소리를 조기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쩌다 피해의식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놀라울 정도다. 보수 언론들마저 지면이든 온라인을 통해서든 한국당 막말 사안을 기사와 칼럼, 사설로 여러 차례 다뤘는데 그것도 반정부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한국당에 프레임을 씌우려는 탄압이라는 것인가.

사실 언론이 한국당발 설화를 즐겨 다루는 한 측면은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클릭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대상이 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대통령이든 별 상관이 없다. 각 사의 정규 기자들 외에 온라인팀, 디지털뉴스팀, 이슈대응팀 소속 기자 및 인턴들이 통신사 보도 등을 짜깁기하며 단시간 내 포털에 쏟아내는 기사들 중에 한국당 소재가 많은 것은 한국당이 그만큼 잦은 설화로 쓸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 주장처럼 네이버에 민주당 정보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이버는 뉴스 편집에서 아예 손을 뗀 상태이며 정치 섹션에서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뉴스'에 들어가 보면 태반이 보수 언론 기사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기사에 달린 숱한 댓글들 내용을 보면 네이버가 민주당이 아니라 거꾸로 한국당 지지자들과 '태극기'들에 장악돼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좌파 장악' 운운하며 언론을 싸잡아 비방하면 논리적 설득력은 고사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한국당의 '싸가지'만 더 부각이 될 뿐이다. 아울러 '극우 막말 프레임'을 자꾸 거론하면 할수록 이는 스스로 '극우 막말 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릴 것이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

한국당 사람들은 또 "민주당은 야당 할 때 더한 막말도 했다"는 레퍼토리로 언론에 항의한다. 그러니까, 민주당도 그랬으니 우리도 똑같이 막말을 계속해서 선거에서 연패를 하겠다는 얘기인가. 과거 민주당이 민심에서 멀어지고 여론의 혹독한 뭇매를 맞으며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했던 주요 원인을 놓고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 나왔던 것인데, 한국당은 문제의 본질은 비껴간 채 오로지 '피장파장'에 입각한 억울함에만 매몰돼 있다.

일련의 막말성 발언들이 지지층은 열광시킬지 모른다. 한국당 사람들의 SNS나 네이버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만 보면 여론이 온통 한국당 편인 것 같다. 세상이 다 문재인과 민주당을 욕하니 막말 자제는커녕 더욱 강도 높은 '증오 마케팅'을 하는 게 적절한 정세 판단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일반 여론과는 판이하게 한국당 때리기를 하는 언론 보도는 '가짜 뉴스'의 온상처럼 느껴진다. 전형적인 '터널 시야(tunnel vision effect)'에 갇힌 것이다. 그 결과는 지지부진한 지지율이다. 한국당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앞서 거론한 대로 강준만 교수는 정치와 선거가 '20퍼센트가 결정하는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대표적 정치컨설턴트이자 선거 전문가인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역시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거칠게 분류하면 30 : 20 : 30 : 20이다"라고 자주 언급한다. "맨 앞의 30%는 2007년 정동영과 권영길의 지지율 합이다. 어떤 경우에도 보수 정당을 찍지 않는다. 마지막 20%는 이른바 '태극기'다. 어떤 경우에도 진보 정당을 찍지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룹은 '스윙 보터'다. 앞의 20%에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가 꽤 될 것이고, 뒤의 30%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위기의 핵심은 세 번째 30%의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는 현실이다"라는 게 평소 지론이다. 이들 스윙 보터에 속하는 유권자 그룹은 한국당의 근래 행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당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키자면, 리얼미터의 '6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황교안 대표에 앞서며 오차범위 내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나타냈다. 지난 5개월 연속 1위를 기록했던 황 대표의 상승세가 처음 꺾인 것도 한국당 입장에선 심각한 일이지만, 진보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경쟁자가 많은 이 총리와 달리 보수 야권에서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 황 대표의 지지율이 아무리 올라가도 20% 언저리에 머문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당장 내일 21대 총선을 치른다면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만일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느냐'고 조사한 결과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39%로 가장 많았다. 한국당은 24%에 그쳤다. PK(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34%, 한국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는 31%를 기록했다.

이래서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르려는 것일까. 한국당의 전략적 노선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온당할까.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은 믿을 수 없다고? 한국당은 양대 기관의 조사를 '조작'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조사라는 게 그 한계 상 예측에 실패할 수는 있다. 현대적 여론조사 통계 기법이 탄생한 미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회사 운영을 하려면 여야를 상대로 두루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정권이나 정당의 운명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판에 어떤 정신 나간 여론조사 기관이 존립의 생명과도 같은 공신력을 포기하고 조작을 감행한단 말인가. 그런 시각 자체가 상식 밖이지만, 그렇다면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는 다르기라도 하단 말인가.

'국내 유일의 중도 정론지'임을 표방하는 한국일보가 창간 65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는 52.3%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39.3%, 한국당 20.4%였다. 특히 내년 4·15 총선 투표 의견을 물은 조사 결과는 한국당으로서 가슴이 철렁할 대목이다. '정권 심판론'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39.0%에 그친 반면 '야당 심판론' 공감은 51.8%로 나타났다. 한국당이 줄기차게 설파하는 '정권 심판론'이 도리어 '야당 심판론'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데일리안은 홈페이지 회사 소개에 '보수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명시한 매체다.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달 23~25일 설문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에서도 이 총리는 24.7%, 황 대표는 21.0%로 나왔다. 또 7월 첫째주 정례조사에서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52.2%였다(리얼미터가 4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도 52.4%).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TK)에서도 45.0%를 기록했다.

절치부심 끝에 전당대회를 열어서 그 이상의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새 대표를 뽑고,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국회 연설로 파란을 일으키며 원내대표는 '전사'로 우뚝 섰고, '헌법 수호'와 '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며 '패스트트랙 육탄전'도 처절하게 벌였고, 장기간 국회 활동을 중단한 채 장외집회와 민생대장정, 그리고 삭발식까지 가열차게 진행했다. 그런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이거나 심지어 후퇴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이대로라면 한국당은 맹렬 지지층만 껴안고 총선에서 장렬히 산화할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말 패배에 이골이 난 정당이다. 선거에서 언제 이겼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졌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이처럼 패배가 당연시되면 지지층이 표를 던지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된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하나의 팀이 되어야 한다. 정당의 구성원이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멋대로 말하고, 당의 기율에 제약도 받지 않는다면 그건 팀이 아니라 오합지졸의 무리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은 소신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민주적인 태도 인양 착각하고 있다.

상대가 잘못하고, 그를 악마로 지목하기만 하면 유권자들이 분노의 응징 투표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짧은 생각이다. 악마화와 음모론은 무지의 표출이자 절망적 현학이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탁월한 정치평론가였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인물과사상> 2015년 6월호에 기고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선거마다 패배하나?>의 일부다. 이 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꿔 읽어보라. 놀랍도록 상황이 유사하지 않은가.

그는 "패배 친화적 정당, 만년 야당으로 살 것인가"라고 개탄하면서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 충고했다.

"설득은 내용보다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 메신저가 싸가지 없이 말하면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수용되지 않는다."

"이슈 선점과 주도권 확보 그리고 '갈등의 치환'이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하면 진보 진영에선 대박이다 아니다를 놓고 다투기보다, '복지가 대박이다'라는 프레임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선거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의 장으로 삼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독재자의 딸이라 얕보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을 욕할 게 아니라,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질 정도로 진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당이야말로 체질 개선의 보약으로 삼아야 할 실로 금과옥조와 같은 얘기가 아닐까. 정당의 구성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멋대로 말하면서 표현의 자유 인양 착각하고, 메신저가 싸가지 없이 말하면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수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간과한 채 매사 언론 편파 타령이나 하면서 막말 정당이냐 아니냐 다투기나 할 게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악의 화신으로 지목하는 '독재자' 대통령이 집권 3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50% 안팎을 고수하고 있다면 왜 다수 국민들, 특히 '스윙 보터'들로부터 한국당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지 이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성민 대표가 지난 5월4일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이념 싸움에 매몰된 야당에 승리는 없다>는 글도 음미해보자.

"캠페인 전문가로서 자유한국당에 전략적 조언을 한다면 1. 민주당(혹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대 강화, 2.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대 약화, 3. 민주당에 대한 지지 약화, 4.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 강화의 순으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4, 1, 3, 2의 순으로 잘못된 전략적 행보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미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고 있고, 이탈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보수층만 바라보는 행보를 한다면 2012년 민주당처럼 총선에서 '야당 심판'의 프레임이 작동할 위험이 커진다. '좌파 독재 타도' '자유 우파 결집' '북한 지령 받는 국민청원'과 같은 과격한 진영 논리는 집권 세력의 실정을 덮어주고 반자유한국당 세력을 똘똘 뭉치게 하고, 총선에서 '자유한국당 심판' 프레임만 먹히게 할 뿐이다."

박성민 대표는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 진단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보수는 '엘리트주의'를 신뢰하고 선호한다. '반지성주의'와 '대중주의'를 혐오하는 문화가 있다. 지적 능력과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외교와 정치에서도 '프로토콜'을 중시하기 때문에 절제된 '품격'을 중시한다. 놀랍게도 (보수정당이라는) 자유한국당이 합리적 보수가 경멸하는 '반지성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품격 없는 막말이 난무한다. 지성은 모자라고 예능은 차고 넘친다. 분노와 비판의 대상이 되면 다시 집권할 기회가 있지만,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면 소멸이 기다릴 뿐이다. 지금은 한국 보수의 'Darkest Hour'(다키스트 아워, 어둠의 시간)다."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7월 첫째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보수성향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6.6%이고 진보성향은 16.3%였다. 반면 자신을 중도보수 성향이라고 한 비율은 25.4%, 중도진보 성향이라고 한 응답은 25.1%였다. 이 폭넓은 중도 성향의 마음을 얻는 데 한국당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역시 손꼽히는 선거 전문가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김헌태는 저서 <분노한 대중의 사회 - 대중 여론으로 읽는 한국 정치>에서 유동적 지지층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들 '노마드 계층'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지지 대상이 고정돼 있지 않고) 이슈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즉, 수도권 여론은 특정 정책이나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빠르게 변화한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 즉 노마드층은 이슈에서도 보수적 선택이나 진보적 선택 하나만 고집하지 않는다. 또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도 역시 고정적이지 않다. 이들은 특정 정치인에게 몰표를 주기도 하지만 급격히 이탈하는 경향도 있다.

이들은 특정인에게 정치적으로 충성하거나 이념적 지향을 실천하면서 뿌듯한 정신적 보상을 받는 층이 아니다. 이렇듯 정치적 태도 자체는 모호하지만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등 고정적 정치 선택의 축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이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만들지 않고서는 누구도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집권을 목표로 한 정치 세력이라면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조응해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중도층 여론을 경시하면서 '근본주의'를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도 좌파이고 민주당도 좌파라는 주장은 서구 유럽에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이지만 한국당은 대한민국 악의 축으로 '독재좌파'를 상정한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자신들의 인식과 일반 여론에 큰 괴리가 있음이 확인됐는데도 맹목으로 일관한다. 무력혁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선거 민주주의를 따르고 있는 마당에 다수 유권자들의 시각과 정서를 외면해서 어쩌자는 것일까.

탄핵 사태 이후 초토화한 보수의 폐허에서 다시 기둥을 세우기 위해 지지층 결집에 우선 골몰했다고 하더라도 과거 40~50% 사이에서 움직이던 새누리당 지지율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중도층, 유동층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보편타당한 '싸가지' 장착은 필수다. 중도 성향 시민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언행과 결별해야 한다. 언론에 본인들이 자꾸 '먹잇감'을 던지면서 왜 물어뜯냐고 화를 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당내에서 누가 사고를 치든 후폭풍을 신속하고 현명하게 차단하기는커녕 상습적인 방관이나 신경질적인 맞대응으로 새로운 불씨를 만들어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태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외부의 엇비슷한 보수 인사들을 불러서 끼리끼리 진영 논리에만 빠져있지 말고 박성민, 이철희, 김헌태 같은 이들을 초빙해 한국당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특강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한심한 여론 조작 음모론 대신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를 초청해 오랜 경험이 농축된 과학적 분석을 경청하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은 각자 성향이나 진영과는 상관없이 한국 정치의 발전이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아마도 초청에 흔쾌히 응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해서 보다 절제된 정치 언어와 생산적인 국회, 민생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면 '싸가지 있는 진보'와 '싸가지 있는 보수' 모두에게 윈-윈의 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싸가지 없는 진보>로 돌아와, 강준만 교수의 아래와 같은 쓴소리는 민주당에 분명히 약이 됐을 것이다. '진보'와 '민주당'을 '보수'와 '한국당'으로 바꿔 숙고해보길 권한다. 그래서 '패배에 이골이 난 정당'으로 고착되지 않기를 바란다. 보수의 붕괴는 진보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잘할 생각은 않고 늘 보수에 대한 비판과 심판으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절대 안 된다. '심판'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를 골병들게 만든다. 정권 심판론에만 의지하다 보면 독자적인 의제 설정이나 정책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을 외치는 와중에서 싸가지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판'은 반대편만을 향할 뿐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다.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이 말 이상 민주당과 진보에 좋은 말이 없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보수를 숭배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hkkim520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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