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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승자 없는 韓日 경제전쟁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0 16:55

수정 2019.07.10 16:55

[fn논단] 승자 없는 韓日 경제전쟁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안이했다는 둥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즉각 보복을 해야 한다는 둥 '아무 말 대잔치'로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우리 언론계에는 정말 치밀한 분석과 합리적 대응방안을 제시해 줄 정론지는 없고 가십보도에 목매는 타블로이드만 있는 것 같다. 이미 시작되었다면 문제는 어떻게 제대로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대응 전략의 첫째는, 일본이 원하는 전선에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정치·외교 갈등을 경제 갈등으로 전환한 것은 경제 전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일의 경제 및 산업 구조를 분석했을 것이고 이에 따른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쪽에서 어떤 맞대응을 하더라도 그들의 예상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결국은 질질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제2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인권 탄압 부각, 일본과 갈등 현안이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한 지지,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 일본산 식품에 대한 안전문제 제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둘째, 냉정하고 천천히 대응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언론의 비난은 무시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일본정부가 정말 우리 IT 산업을 궁지로 몰아 놓고 싶었다면, 불과 수주 안에 공장 가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핵심 중간재들이 있었다. 이번 수출 제한 조치는 '철저히 간 보기'이다. 한국정부의 역량이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우리가 맞대응할 경우 즉각 후속 보복 조치를 발표할 것이다. 이미 그에 대한 언론 브리핑 보도자료 초안까지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최적의 대응은 확전을 시킬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시간을 끌어 상대방의 피로도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셋째, 겉으로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염려하는 척하면서 일본의 위상을 다운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일본이 싫어하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경제 선도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따라서 지금 일본이 하는 수출제한조치는 후진국이나 하는 반자유무역주의적 행태라는 점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이 더 의연하고 한국인이 더 선진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마 일본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한 지지 여론을 확보하고자 자국 내 혐한(嫌韓)을 조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반일의 천박한 국수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싸움은 일본국민이나 일본기업이 아닌 일본정부와의 싸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여 한국과 일본 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이번 2019년 기해년의 왜변(倭變)은 일본정부가 잘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가 추측하기에는 한국정부도 이미 예상하고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아마 이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가들이 모두 제정신을 차리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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