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무리한 기업 비판보다 뚝심 보여야

"무엇보다 핵심 부품소재의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녹색성장과 신성장동력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핵심 부품소재의 기술자립화가 이뤄져야 한다."

2008년 11월 말 임채민 당시 지식경제부 제1차관이 본지 기고를 통해 강조했던 문구다.

10여년이 지난 2019년 7월 초 일본의 대한(對韓)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부품소재 종속국 대한민국의 초라한 현실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영화나 책으로 언급되던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10여년간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는 자성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4차례에 걸쳐 부품소재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부품소재 역량 강화를 도모했지만 결과는 미미했다.

현재 수출규제 대상인 반도체 소재는 아니나, 수출용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소재만 봐도 우리나라 부품소재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LCD 패널의 부품인 액정이나 휴대폰에 들어가는 TAC 필름은 2008년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서 99.4%를 들여오는 현실은 참담하다.

반도체 외에도 일본이 소재 수출규제 범위를 넓힌다면 타격을 받을 산업이 수두룩한 셈이다.

일부 제조업체는 일본산 소재 사용내역을 전수조사하면서 대비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는 없다.

기초가 아닌 완성품 제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 대한민국 산업의 민낯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곳곳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됐다' '소재개발 시기를 놓쳤다' 등의 성토가 쏟아진다.

일차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몰리자 여당은 대기업에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 이들이 막대한 수익만 거두고 불공정한 구조를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이 국내 부품소재 기업을 지원하지 않아 대기업 독식 구조가 고착화돼 소재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도 여당의 대기업 비판에 편승했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정확히 봤다. 정부만의 노력이 아니고 수요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번 일로 소재 패널기업들이 각성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부품소재 산업을 키우는 것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기업 입장에선 조립(어셈블리) 분야만 키워도 돈이 된다. 조립만으로도 더 쉽게 빨리 갈 수 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품소재 분야는 등한시해왔다. 기회비용일 뿐이다. 기업 입장에선 잘할 수 있고, 결과를 빨리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했다.

정부·여당은 기업을 비판하기보다 지원책을 꺼내 들어 '함께 견디고 같이 가자'고 했어야 한다.

일본이 보인 치졸함을 자극제로 삼아 소재개발의 불씨를 제대로 살려보자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야 할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소재개발 특성상 단기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돈이 안되니 개발을 접자고 할 수 있고, 관심에서 멀어지면 손을 놓을 수 있다. 그렇게 기업은 다시 일본산을 찾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 정부는 그냥 뚝심 있게 할 여건을 마련해주면 된다. 일본의 무역보복을 뚝심의 비료로 활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