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佛 스타트업 생태계 이끄는 스타시옹 F

프랑스가 바뀌고 있다. 자국 전통문화와 자국 언어인 불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커서 좀처럼 영어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던 나라다. 우리나라가 강한 IT 분야에서 알려진 프랑스 기업도 없어서 경제 전문가들조차도 프랑스의 주력산업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 프랑스가 최근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필자가 불어로 말을 거는데도 영어로 대꾸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도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도 꺾어야 함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정도가 바뀐 것으로 한 나라 경제가 크게 바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더 깊은 변화는 프랑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농업이 강하지만 그것이 프랑스 경제를 이끌 정도는 아니고,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약한 분야의 산업들, 즉 화학(제약 등 정밀화학 포함), 항공우주, 원자력발전, 수자원 관리 그리고 TGV로 대표되는 철도산업 등에서 강점을 보여 왔는데 이들은 모두 이른바 중후장대형 산업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를 빨리 읽고 그에 대응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 왔는데, 그런 프랑스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인 파리의 스타시옹 F를 며칠 전 찾아갔다. 스타시옹 F는 통신사업 등으로 돈을 번 젊은 사업가 자비에 니일이 이곳에 있던 철도기지를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넘겨받아 본인의 자금을 부어 건설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데, 국내외 스타트업들에 입주기회를 주고 스타트업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유치해 운영하고 있다. 파리 시내에 3만4000㎡, 600여개의 독립공간을 만들어놓아서 현재 1000여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고, 30여개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프랑스의 자세와 우리나라의 자세 사이에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대부분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스타트업을 위한 인큐베이터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어놓고 민간기업인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데 비해 프랑스는 정부가 부지를 제공한 것을 빼고는 민간이 주도해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셈인데, 이런 이익추구형 민간주도 방식이 스타트업을 지원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 최근 입주한 한국 스타트업 대표의 말을 들어보면 스타시옹 F에서는 매일 도태돼 나가는 기업들과 새롭게 입주하는 기업이 몇 개씩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보다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더 중시하는 프랑스로서는 특기할 만한 변화인 것이다.

이런 민간 주도 정신은 이곳에서 운영되는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 유수의 스타트업 대부들이 프랑스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프랑스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도 이곳 스타시옹 F에 들어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공공기관도 공간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스타트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초점을 맞출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이런 민간 주도 정신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도훈 서강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