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어느 일본 외교관의 다이어리

오래전에 우연히 '코리안 스쿨(한국통)'로 볼만한 한 일본 외교관의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다.

개인적인 일정이나 공무상 일정은 보지 못했으나, 수첩 안엔 그만의 '특별한 달력'이 있었다. 특별 달력이란, 한·일 관계와 관련한 민감한 날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프린트해 놓은 것이었다. 한국 공휴일 사이사이에 헤이그 특사 파견, 이준 열사 순국일 등 한국 사람도 미처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는 한·일 양국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이 표시돼 있었다. 말하자면 '과거사 특별 달력'이었다.

"왜 이런 것들을 만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한·일 간 대화나 관련된 행사를 추진할 때(한국쪽 입장을 배려해) 민감한 날짜들을 피하기 위해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었다. 열두달짜리 수제 달력이 줬던 잔상은 오래도록 갔다. 한·일 관계에 대한 그 개인의 진지함과 성실함, 그리고 정교함을 느꼈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우리 외교부나 청와대에 이런 달력을 만든 외교관이나 공무원이 있을까 반문해본다.

우린 당당했지만 정교하진 못했다. "일본이랑 관계가 허물어지면 뭐가 손해죠?"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뭔가요?" 지난해 초 전직 외교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 어떤 차원이냐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얘기할 때 일본이 같이 공조해주면 입김이 더 세진다. 일본이 훼방놓으면 힘들어진다. 전쟁이 터지면 일본이 후방기지 역할을 해줄 것이다"라고 했다. 경제관료들 역시 일본의 중요성 같은건 그리 파악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있을법도 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간 장관급, 차관급 정례 대화도 지난 수 년간 없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후 만난 일본 정부 관료는 사석에서 이런 얘길 했다. "한국은 왜 중국(사드 보복)에 대해선 아무 말 못하면서 일본에 대해선 말할 수 있느냐. 우리는 그것도 기분이 나쁘다."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는 외형상 '탈일본'을 진행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이 보여줬던 배신이 암암리에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메모광으로 유명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저서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일본이 보였던 행동을 상세히 기록해놨다. "일본은 머나먼 이웃이었다. IMF 구제금융이 합의되기 전후 일본은행이 70억달러를 집중적으로 회수함으로써 모라토리엄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던 나는 (1997년)12월 19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카키바라 차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세 번의 노력은 아무 결과도 없었고,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만 안겨주었다."

1997년의 '오답노트'를 기반으로 그렇게 한국은 외형적으로, 심리적으로 '탈일본'을 진행해왔다. 한 번도 일본의 '동생나라'라고 여겨본 적 없는, 한국을 향해 일부 일본의 식자층에선 은연중에 이런 얘길 한다. "과거 일본이 한국의 산업발전에 도움을 줬건만 이제는 그런 동생나라가 우리와 대등한 경쟁상대로 돌아왔다. 그 점이 일본을 불편하게 한다." 꽤 오랫동안 아베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가스미가세키'(일본 관가를 통칭함)의 경제산업성 관료들과 우리 산업통상자원부가 데면데면했던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있을 것 같다. 세계무역기구(WTO) 수산물 분쟁에서 패한 경산성 관료들이 반격의 칼을 뽑아든 것이란 해석도 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지난 두 달간 WTO 역전승에 도취해왔을 때 경산성은 반격카드들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었고, 그 대상도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삼성전자였다. 경제발전의 성취감에 가려졌던, 또 정교하지 못했던 대응이 경제왜란을 야기한 셈이다. 결국 2019년 버전으로 22년 만에 오답노트를 다시 써야 할 때인지 모르겠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