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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한·일 경제전쟁시대에 새겨보는 역사의 교훈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5 17:27

수정 2019.07.15 17:27

[fn논단] 한·일 경제전쟁시대에 새겨보는 역사의 교훈
일본이 경제제재의 칼을 빼들었다. 이미 징용 배상 판결이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서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일본을 비난하면서 반일을 외치고 있고, 국민들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펼치며 이번만큼은 극일을 제대로 해보자는 결기가 SNS를 가득 메우고 있다. 대부분의 두나라 일반 국민들은 서로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양국 정치권의 전략에 따라 발발한 이번 갈등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전쟁이 시작됐다면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기려면 냉철한 전략이 필요하고,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더구나 수천년을 이웃나라로 지내며 숱한 전쟁을 치른 한·일 관계라면 이미 우리에게 교훈 삼을 만한 역사는 충분하다. 오늘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우리가 한·일 간의 냉전상황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지 과거 1차 산업혁명 시대의 역사적 교훈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1850년대 1차 산업혁명의 엄청난 기계문명을 장착한 유럽과 미국의 문명은 동아시아 정복에 나섰다. 이때 조선은 흥선대원군 지휘하에 쇄국을 선택했다. 반면 일본은 해외유학파를 중심으로 유럽식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며 혁명적 변화, 메이지유신을 실천했다. 그 후 100년, 조선은 멸망한 채 피와 희생으로 얼룩진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했고, 일본은 수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됐다. 지금도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 열강이 되어 그 지위와 복락을 누리고 있다. 오죽하면 일본 최고액권 1만엔권의 초상 인물에 메이지유신의 상징 '후쿠자와 유키치'를 사용했다. 최근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을 언급한 것도 바로 그들이 추억하는 역사상 최고의 선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의 쇄국을 잘 기억하지 않는다. 사실 당시 쇄국은 혁명에 비해 손쉬운 선택이었고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외세에 국운을 맡길 수는 없다는 대원군의 외침은 온 국민을 저항군으로 만들 만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킬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죽창으로 기관총과 대포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힘이 없던 조선은 결국 일본에 의해 패망했다. 이것이 1차 산업혁명기 우리 역사의 교훈이다.

반일, 극일 말로는 쉽다. 모든 국민이 다 동참하겠다고 나설 만큼 인기도 좋다. 그런데 모든 전쟁은 말과 인기가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 승부다. 미국과 중국, 대륙의 문명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문명교체기에 우리가 할 일은 '디지털문명'으로 혁명적 전환을 시도하며 세계 경제와 격을 맞추는 일이다. MS,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의 시총 합계는 2018년 5000조에서 1년 사이 6000조를 넘어섰다. 그 거대자본이 우리 기업에 오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경제문명에서 보자면 우리는 아직도 명백히 대원군의 쇄국이 지배하는 나라다.
우리 아이들 고사리손에 죽창을 들려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정신력으로 맞서 싸우라고 내보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일본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실력을 키울 때다. 마음속 대원군을 몰아낼 때 비로소 진정한 극일이 시작된다.
불과 100년 전 역사의 교훈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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