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대일 외교, DJ가 그립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5 17:27

수정 2019.07.15 17:27

그는 왜 수교협상에 찬성하고 아키히토를 천황이라 부르고 통화스와프 채널을 뚫었을까
[곽인찬 칼럼]대일 외교, DJ가 그립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김 대통령(DJ)은 도쿄 궁성에서 아키히토 '천황' 내외를 만났다. 천황이란 호칭에 대해 김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외교가 상대를 살피는 것이라면 상대 국민이 원하는 대로 호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궁성 만찬에서 과거사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천황 앞에서 공격적인 언사는 일본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줄 수도 있었다.
"

그 대신 DJ는 이튿날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만나 과거사 문제를 꺼냈다. 그 내용은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담겼다. 오부치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시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 관계를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나라는 1965년 기본조약을 토대로 수교했다. 이를 1965년 체제라 부른다면 김·오부치 선언은 1998년 체제라 부를 만했다.

일본도 얻은 게 있다. DJ는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시장에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 일본 영화, 가요를 전면 개방한다는 소식에 국내 여론은 들끓었다. 사무라이 영화와 엔카(일본가요)가 판을 치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기우였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연가' 같은 한류가 일본을 휩쓸었다. DJ는 "우리 문화의 저력을 믿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옳았다.

2001년 7월 김대중정부는 일본과 20억달러짜리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같은 비상사태가 터졌을 때 파트너 국가에서 요긴하게 꺼내 쓸 수 있는 돈이다. 외환위기 때 엔 자금이 한국에서 쑥 빠져나가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DJ는 이때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았다. 20억달러로 출발한 한·일 통화스와프는 700억달러까지 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2012년 8월)을 계기로 일본이 연달아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2015년에 0원이 됐다. DJ가 애써 뚫은 통화스와프 채널을 후임자들이 다 망가뜨렸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1940년 6월 하원 연설에서다. 당시 독일군에 쫓기던 영·프랑스 연합군은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에서 대규모 철수작전을 펼쳤다. 영화 '덩케르크'(2017)에 나온 그대로다. 처칠은 덩케르크 철수를 두고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호소했다. 평가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칠의 호소는 큰 울림을 낳았다.

DJ는 박정희정부가 추진한 한일 기본조약과 부속 청구권 협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자서전에서 "돌아보면 야당 강경파는 국제적 고립을 스스로 불렀다. 세계 여론이나 국가 장래의 이익에 눈을 돌렸어야 했다. 무엇보다 안보와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을 우방으로 끌어들여야 했다"고 썼다. 반세기 전 DJ의 혜안이 놀랍다.

목포상고를 나온 DJ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해운사 사장을 지냈다. 그래서일까, 그의 대일외교는 빈틈없이 실용적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DJ라면 과연 누구처럼 독도를 방문했을까? DJ라면 과연 누구처럼 아베 총리가 만나자고 조를 때 그토록 매몰차게 외면했을까? DJ라면 과연 누구처럼 정부 간 합의를 무시하고 한·일 관계가 경제보복에 이르도록 방치했을까? 그는 늘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일 외교가 수렁에 빠진 지금, DJ의 지혜가 그립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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