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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세법 앞에 작아진 LG전자의 혁신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8 17:40

수정 2019.07.18 19:17

[기자수첩] 주세법 앞에 작아진 LG전자의 혁신
LG전자가 참 난감해졌다. 4년여 개발 끝에 세계에서 처음 캡슐형 수제맥주기계를 출시했는데, 국내 주세법에 가로막혀 마케팅이 쉽지 않게 됐다.

가전업체인 LG전자는 주류를 제조할 수 있는 면허가 없다. 이 때문에 제품 판매 과정에서 시음행사를 할 수 없는 게 치명적이란 평가다. 그 통에 16일 열린 제품 출시회도 국내법 적용을 면제받는 서울 세종대로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열었다.

시음행사를 하다가 법적 처벌을 당할 수 있으니 치외법권 지역인 대사관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송대현 LG전자 사장은 제품 출시행사에서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송 사장은 "주류와 관련된 법규가 까다로워서 지키기가 참 어려웠다. 앞으로 걸림돌이라고 하면 저희가 술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지 않느냐. LG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할 텐데 손님이 맛을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도 맛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고객은 우선 맛을 봐야 한다. 그런데 맛을 보여드릴 수 없이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다시금 토로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도 여러번 신어보는 게 소비자 마음인데, 수백만원짜리 맥주 제조기를 맛도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커 보였다.

LG전자는 제품 개발 중간에 이런 문제를 인지했는데 해결책이 없었다고 한다. 국내 시장부터 규제에 발목을 잡히면서 미국 등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다행인 것은 주세법을 관장하는 국세청이 문제를 인식하고 활로를 찾기 위해 나섰다는 점이다.

국세청 팀장급 관계자는 기자에게 "시대가 바뀌어서 (LG전자가) 특이한 제품을 만들다 보니 국내 법규와 일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며 "이 회사 입장에서 (규제를) 풀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고민을 해달라고 담당자에게 조치를 해놓았다"고 전했다.

정식 면허가 없어도 특별한 경우 임시면허를 부여하는 법상 예외조항이 있는 만큼 이번 사례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설명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기업 자율과 시장 규범에 경영을 맡기고 과감한 규제개혁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가 법규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법이 정당한 시장에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면 예외 방안을 찾는 것도 정부 역할이다.
이번 문제가 잘 해결되길 기대한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산업부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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