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장애, 忍] "영화관 못 가요" 장애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권리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20 09:59

수정 2019.07.22 10:20

여전히 열악한 장애인 영화관람 시설
"장애인에게도 여가생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제공해야"
[편집자 주] '인(忍)'이라는 한자에는 '참다' 이외에도 '잔인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장애, 忍'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의 잔인함을 어떻게 견디고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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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김상호(43·가명)씨는 영화관을 간 지 5년이 넘었다. 가끔 지인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으면 거절한다. 몇 년 전 친동생과 함께 봤던 영화도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동생이 화면 해설을 해줬지만 다른 관객에게 시끄러울까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상호씨에게 영화관은 장애를 실감케 하는 차별의 장소다.

2019년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4편(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이나 탄생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횟수는 4.18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천만관객 사이 장애인의 존재감은 흐릿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장애인을 위한 관람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장애인에게 영화관람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가깝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장애인 영화관람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1회 이상 영화를 관람한 장애인 비율은 약 24%. 전 국민의 영화 관람 비율이 61.6%인 것과 대조했을 때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보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50개 영화관의 전체 관람석 중 장애인관람석 비율은 평균 1.76에 불과하다. 각 상연관 마다 2~4석 정도 마련된 장애인석은 그마저도 맨 앞줄이나 맨 뒷줄 구석에 위치해 영화를 관람하기 부적합하다.

또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화면해설과 한글 소리자막 등을 제공하는 '배리어 프리 영화(Barrier Free)'는 영화관당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상영돼 관람이 제한적이다. 2011년 청각장애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가니'조차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을 제공하지 않아 정작 청각장애인은 볼 수 없었던 게 현실이다.

최근 몇 년 간 영화관에 빠르게 보급된 무인단말기(키오스크)는 비장애인 기준으로 제작돼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청각장애인 노연희(51·가명)씨는 "외국영화는 자막이 있어서 어떻게든 볼 수 있지만 한국영화는 자막이 없어서 영화관에서 본 지 오래됐다"며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 해도 많아야 한 달에 한두이다. 비장애인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겐 그런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지체장애인 정현석(53·가명)씨는 "장애인 친구들과 여럿이서 영화를 보러 가도 휠체어석 자리가 부족하거나 떨어져 있어서 같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좋은 위치에 휠체어석이 있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만 갖춰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 15조에 따르면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상영관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의무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은 화면해설과 자막을 요청하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영화관은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도록 법규로 정해놓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영화관인 '리갈'은 직접 제작한 안경을 쓰면 렌즈 하단에 자막이 보이도록 하는 서비스를 도입해 청각장애인을 배려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는 "영화관을 이용하는 행위는 사적영역에서 여가생활"이라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이 장애인에게만 선택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화면해설과 자막 같은 기본적인 편의도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관람 요금을 할인해주고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영화관 #배리어프리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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