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14년 전 노무현의 고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29 17:38

수정 2019.07.29 17:38

개인청구권 따로 있다면서도 징용피해자에 정부 보상 결정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한 혜안
[곽인찬 칼럼]14년 전 노무현의 고뇌
문재인 대통령이 화가 난 걸 이해한다. 문 대통령은 줄곧 한·일 과거사와 미래를 따로 떼서 보자고 말해왔다. 이달 중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서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을 만나서도 "대법원 판결(2018년 10월)이 한일기본협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불쑥 과거사를 미래와 걸고 넘어졌다. 우방인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 칼을 휘둘렀다.
그것도 반도체라는 급소를 찔렀다. 이러니 화가 안 나겠는가. 문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사를 경제와 연계시킨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즉각 비판했다. 문·아베 관계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아슬아슬하다.

일이 꼬일 땐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에 서보는 게 좋다. 아베 총리는 왜 도발적인 선택을 했을까.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전승국 48개국은 일본과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한국은 48개국 안에 끼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패전국 일본에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미·소 냉전 속에서 미국은 일본을 제 편으로 붙들어 놓는 게 급했다. 미·일 안보조약이 샌프란시스코조약과 같은 날 체결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의 틀 안에 있다. 한일조약 전문(前文)에 "1951.9.8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평화조약의 관계규정을 상기한다"는 대목이 있다. 부속서인 청구권협정(2조1항)도 "샌프란시스코조약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아베 총리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 간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다만 미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헛발질이 될 공산이 크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은 다름아닌 미국의 작품이다. 미국이 한국 편을 들면 제가 만든 질서를 스스로 깨는 격이다. 아베 총리로선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한·일 관계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재면 답이 안 나온다. 타협이 불가피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고육책을 찾았다. 당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는 "1975년 우리 정부의 보상이 불충분했다"며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2007년 12월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른 보상도 넉넉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에게 통 큰 해법을 주문하고 싶다. 이번 기회에 특별법을 제대로 다시 만들면 어떤가. 청구권 자금으로 한국 경제가 이만큼 일어섰다. 피해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일본에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고민 끝에 내렸던 처방이다. 노 대통령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둘 만큼 과거사 정리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일 외교만큼은 현실을 중시했다.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제안하자면 문 대통령이 대범하게 유니클로 매장을 방문하면 좋겠다. 경제교류는 두 나라의 미래다.
과거사와 미래는 따로 가야 한다. 그래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으면 그땐 정말 '12척' 비장한 마음으로 일본에 맞서자.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