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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DMZ 드라마, 그 후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1 17:33

수정 2019.08.01 17:33

[여의도에서] DMZ 드라마, 그 후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던 6·30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한달을 지났다. 판문점 회동이 드라마로 표현될 수 있는 이유는 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상황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들어 친서를 주고받으며 하노이 정상회담 '노딜'로 얼어붙은 북·미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했다. 때문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나서기 전 "이번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싹뚝 잘랐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무성은 지난달 말 "협상 자세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며 공세를 폈다. 남측에 대해서는 오히려 빠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 담화를 통해 북·미 대화를 하더라도 남측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못을 박았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었다. 방한 당일인 29일 오전 "김 위원장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남과 북의 국경지대인 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하며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 트럼프 스스로도 '아침에 생각나 제안했다'는 이 트윗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화답하며 상황은 급진전됐다.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청와대 만찬을 제쳐두고 판문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결국 다음날인 30일 한·미 정상이 판문점을 찾았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며 DMZ 드라마가 완성됐다.

이처럼 DMZ 드라마가 성공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미·일 정상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받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무대를 만들었다. 한·미·일 정상의 톱다운 정치가 만든 작품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주인공들이 뒤로 물러난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북·미 간 실무협상은 예정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동맹 19-2'를 거론하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한의 핑계일 뿐이라는 시각이지만 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한 마당에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물밑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북·미 관계와는 달리 남북 관계는 멈춰선 상태라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은 미사일 발사가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뒤로는 동맹 19-2, 전략무기 도입과 같은 남한의 이중적 행태 때문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여기에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산 쌀 5만t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형국이다.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는 이유에 대해 한 전문가는 북한과 미국처럼 우리 정부 역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대북정책이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만 기다리는 톱다운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정부는 북·미 대화와 남북 관계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고 국민들에게 어떠한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하고 있다. 주연들이 한발 물러선 상황이라면 조연들이 아껴뒀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주인공 세명만으로는 드라마를 찍지 못한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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