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순민 칼럼] 이상천 제천시장이 옳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7 17:40

수정 2019.08.07 18:50

8일 개막 '제천국제영화제'
日영화 예정대로 상영키로
민간 문화교류는 이어져야
[정순민 칼럼] 이상천 제천시장이 옳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도요타의 도시'로 불리는 일본 나고야에서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미술제다. 지난 2010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신생 미술제이지만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그 어떤 미술행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 미술제에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사실 좀 놀랐다. 한·일 양국이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민감한 시기에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이 과연 무탈하게 전시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 전시를 추진하다 이미 한 차례 철거된 적이 있는 터였다.

사달이 나는 데까지는 사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일 미술제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 그후' 전시 중단을 통보했다. 오무라 지사는 전시회 개막 이후 1400여건에 달하는 항의와 테러 협박 등 안전 문제를 중단 사유로 들었다. 이에 앞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전시 반대의사를 공식 천명했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교부금 지원 여부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겠다"며 주최 측을 은근히 압박했다. 소녀상을 바라보는 일부 일본인들의 불편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된 의사결정 과정은 '폭력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일 무역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민간에 의한 문화교류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집계·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총 35건의 민간교류 행사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파행을 겪었다. 충남 서산과 보령에서 열리기로 했던 일본 중·고생 홈스테이 행사가 전격 취소됐고, 매년 한국영화제를 개최했던 니가타현 시바타시는 최근 행사 후원 중단을 결정했다. 또 올여름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었던 일본 여성작가 구보 미스미의 신작 소설은 이미 인쇄를 마쳤지만 출간을 가을 이후로 미뤘다.

이런 가운데 8일 개막하는 제천국제영화제가 예정대로 일본영화 7편을 상영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영화제 측은 출품작들이 정치적 내용과는 거리가 먼 순수 예술작품인 데다 일부 영화는 다른 나라와 합작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제천시의회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보복으로 우리 경제를 흔드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일본영화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제천시의회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일본영화 보이콧이 경제전쟁을 걸어오는 일본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될 수는 없다. "제천국제영화제가 민간 문화교류의 장이라는 점을 신중하게 고려했다"는 이상천 제천시장의 고충을 이해한다.

서울 중구청의 '노 재팬(No Japan)' 배너 철거 해프닝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지난 6일 중구청이 명동을 비롯한 대표적 관광지에 '노 재팬' 깃발을 내걸자 지역상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우려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보이콧 재팬'에 찬성하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개인적 차원에서 불매운동에 참여할 순 있지만 관(官)이 직접 나서서 혐일(嫌日)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그러자 "관군, 의병 따질 때가 아니다"라던 중구청도 반나절 만에 깃발을 모두 내리고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천개, 만개의 깃발을 내걸고 싶지만 사태를 가파르게 몰아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한·일 양국이 끝내 절연(絶緣)할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본의 침략으로 7년 전쟁을 치른 조선도 전쟁이 끝난 뒤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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