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일본행 항공권 팔면 매국?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8 17:45

수정 2019.08.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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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행 항공권 팔면 매국?
밥벌이는 고단하다. 하지만 요즘 우리 항공사 직원들처럼 일본행 항공권을 파는 제 밥벌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행위라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것 같다.

지난 7월 초만 해도 이 정도까지 심각해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당시만 해도 "너도나도 일본 특가 항공권을 내놓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홍보를 못하고 있다"며 "지금이 일본여행의 기회"라는 농담도 건넸다.

하지만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금 항공사 직원이 저런 농담을 했다면 그 자체가 기사거리다.
공영방송 뉴스 앵커가 "이 볼펜은 국산"이란 해명을 해야 할 정도로 '반일감정'이 커졌다. 일본행 항공권을 사는 건 비밀이다. 당연히 일본을 중심으로 국제선 영업을 하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은 비상이다. 이들은 지금도 일본노선을 축소하고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엔 여행 가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자기 만족을 찾는 이들이 많다"며 "그런데 지금은 일본여행 취소 인증샷을 게재한다"고 말했다.

항공사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고꾸라지는 회사 실적만이 아니다. 다른 항공사 직원은 "일본행 항공권을 파는 걸 '이완용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시각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 와중에 일본여행 거부 운동으로 공석이 된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대한항공 직원들이 헐값으로 대거 구매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이 회사의 창립이념인 '수송보국'이 민망해졌다. 사명에서 '대한'을 떼야 한다는 비난이 거셌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이 항공사 직원과 가족들은 최근 1개월간 일본행 티켓을 오히려 작년보다 30% 이상 덜 샀다.

최근 일본여행이 줄어 항공사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기사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는 한 항공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노 재팬(No Japan)' 머리띠라도 둘러야 할까봐요." 한·일 간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낸 주범은 일본 아베 정부다. 밥벌이를 두고 애국과 매국을 논하며 일삼는 우리 안의 손가락질이 '극일(克日)'에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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