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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한·일, 극적 합의 서두를 필요없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8 17:45

수정 2019.08.08 17:45

[여의도에서] 한·일, 극적 합의 서두를 필요없다
최근 '한국통' 일본인 학자는 한 강연에서 "한국의 입장이 애매하다. 우리 편(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무역·안보블록)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보면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한·일 FTA(자유무역협정)를 안한 이유 아닌가"라고도 했다. 양국 간 대화를 강조했으나 오만함과 불편한 속내가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미·중 충돌 2년, 관세-첨단기술-통화(환율)로 확전 중이다.
지배·신흥세력 간의 패권다툼, '예정된 전쟁'이다. 한국·일본의 경제갈등은 그 큰 전장의 '국지전'이다. 김현종(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런 세계 조류를 "기술혁신 주도권 경쟁이 보호무역과 어우러진 사생결단의 패권 다툼으로 갈 것"이라고 통찰했다(통상교섭본부장 퇴임사, 3월). 그간 구축된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미·중·독·일 중심의 리저널(지역) 밸류체인으로 분화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對)한국 경제공격은 미·중 경제전쟁과 본질은 같다. 미래기술 패권의 견제와 팽창 억제라는 점에서다. 지배·신흥세력 간 충돌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주장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한 국가가 스스로 자국의 생존이 걸린 품목이라 판단하는 수입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예정된 전쟁').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열강의 기술을 흡수했다. 150년 기술의 축적, 그들의 자부심이다. 소재·부품·장비를 한국에 팔아 '절대적' 무역흑자를 쌓았다.(1965년 한·일 수교 이후 2018년 누적기준 대일 무역적자는 6045억달러. 지난해 우리 전체 수출액(6049억달러)과 맞먹는다). 그런 일본이 불안하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초단기 성장했다. 반도체·TV·휴대폰·철강·조선 등 '하드웨어'에서 일본을 앞섰다. 특히 과거사 갈등 속, 문재인정부는 '극일(克日)' 비전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①미·중·독에 이은 세계 4대 제조강국(제조업 르네상스전략, 6월) ②2040년 수소차 620만대 세계 1위 달성(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1월)(일본은 2030년 80만대 목표) ③2030년 종합반도체 강국(시스템반도체 전략, 4월) ④수출 세계 4강 도약(한국 6위, 일본 4위)(문재인정부 신통상전략, 2018년) 등이 그것이다. 이를 관통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한·중·일 밸류체인이다.

일본은 영리하다. 이달 초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했다. 1194개 핵심물자 통제를 빌미로 한·중·일 밸류체인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렇게 한국의 미래산업 성장판을 건드릴 것이다. 과거사가 이유라지만, 그것뿐일까. 한국은 북으로 팽창(화해·협력)을 추구한다. 일본은 동맹국 미국의 통상압박에 처해 있다. 한국을 출구로 삼은 것이다.

기습 보복에 정부는 우왕좌왕 '정부다웠다'. 관료와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한 결과다. 뒤늦게 일본에 가서 치욕을 당하고 돌아오지 않았나. 과거 어느 때보다 '비장하게' 소재·부품·장비 대책도 내놨다. 첨단소재 국산화 수입처 다변화, 방향은 옳다. 수십년 같은 실패를 되풀이했으면 됐다. 더도 말고 '대책'대로만 하길 정부에 바란다. 내부에서 공포를 과장하는 일은 경계한다. 한스 로슬링은 저서 '팩트풀니스'에서 "공포와 위험은 엄연히 다르다.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힘을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통증 없는 치유는 거짓이다.
외부자극에 '내부'를 정확히 보는 시간일 수 있다. 한·일 경제갈등은 미·중의 긴장과 같은 시기를 통과할 것으로 본다.
극적 합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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