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한·일 갈등, 감성적 애국주의를 경계한다


역사는 우발적 또는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대형사건, 전쟁으로 비화된 경우가 많다. 지난해 대법원 징용근로자 판결로 시작된 한·일 갈등은 경제전쟁으로 확대되고, 수십년 동안 우방국으로 유지된 경제, 외교, 안보 등 한·일 관계가 최고조로 악화돼 안타깝다. 1945년 광복 이후 태어난 인구수가 전체 인구의 약 95% 되는데도 일본과의 관계에 무조건 '반일(反日)'은 애국이고, '친일(親日)'은 매국이라는 이분법적인 감정적 트마우마가 심하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을 정부·여당은 '경제전쟁' '경제침략'이라고 선언하고 승리를 위해 구한말의 의병운동, 동학운동, 죽창가를 거론하고 급기야 400여년 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승전보를 통해 일본에 대한 임전무퇴, 분노표출 등 '감정적 애국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애국주의는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존심, 명분론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운동경기나 게임, 기업의 경쟁기업과 협상, 나아가 국가 간 협상에서도 먼저 평정심을 잃거나 흥분하는 쪽이 불리하다. 일본과 합리적 타협과 조속한 해결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에게 '일본에 가서 살아라'라거나 친일 매국세력, 토착왜구라고 비난하는 등 과격한 매카시즘이 우려된다. 한·일 문제의 감성적 접근은 병법(兵法)의 상책, 중책, 하책 중 '하책'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총체적 국력, 즉 경제력·기술력·외교력 모든 게 우리나라보다 몇 체급 높은 냉혹한 현실, 우리의 경제구조가 국민총소득에서 무역액의 점유비율이 80%를 넘는 대외의존형 구조, 우리의 수출은 외국 소재를 수입해서 가공 후 외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계된 점 등 복잡한 대외문제를 감정으로 해결할 사항이 아니다. 거리 곳곳의 반일구호를 적은 현수막, 일본산 물품 불매운동, 일본대사관과 광화문광장 집회 등 '감성적 애국주의'가 심각한 한·일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이 된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역사인식에 사로잡혀 과거 정부의 각종 정책을 부정하는 측면이 있다. 경직된 도덕성, 반일감정 때문에 경제 강대국인 일본과 통상·외교·안보 등에 갈등의 빌미를 주는 것 자체가 국익에 전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 "진정한 애국심은 무엇인가?" "경제전쟁의 승자는 누구이고, 이로 인한 우리의 국가적 손익은 무엇인가?" "일본과 경제전쟁에 우리의 국력을 소진할 필요성이 있는가?" 결국은 아무 죄 없는 우리 기업과 국민이 부담하는 한·일 간 경제전쟁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과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이미 추경예산에 일본대책 수천억원의 세금이 투입되고, 내년 예산도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며, 주가하락으로 인한 며칠 새 수십조원의 손실은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연금재산의 손실로 모든 국민의 미래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경제성장률 하락, 해외자금 이탈, 우리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등 부정적 파급효과가 크다.

경제가 어려우면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층 취업문이 더욱 좁아질 수도 있다.
경직된 명분싸움보다 현실적 실리를 위해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라'는 속담처럼 양국 지도자의 외교적 담판을 통한 '호혜적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용기는 목숨 걸고 싸움을 잘하는 것만 아니라 필요할 때 전략적 후퇴를 결정하는 결단력이다. 400여년 전 청나라가 침략했을 때 강대국 청나라와 맞붙어 싸우면 국가와 백성에게 불리하므로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 청나라가 북쪽의 오랑캐라는 유교적 명분 때문에 아무런 대책 없이 전쟁을 주장한 김상헌, 두 사람 논쟁의 21세기 데자뷔가 떠오른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前 관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