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송파 세모녀, 탈북 모자도…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했다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9 17:09

수정 2019.08.19 17:09

부끄러워서, 할 줄 몰라서… 신청 안하면 못받는 복지혜택
전문가들 보장 우선으로 바꿔야.. 정부 '복지멤버십' 앞당기기로
한번 가입하면 수급방법 자동안내
#.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민 한모씨(42)와 6살 아들이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나 뒤늦게 발견됐다. 이들은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씨의 탈북을 도운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한씨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 하자 주민센터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떼오라고 말했다"며 "중국 국적의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어떻게 떼올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파 세모녀, 탈북 모자도…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했다


■복지 공무원 "복지 사각지대 있다"

'송파 세모녀' 부터 최근 탈북 모자까지 거듭되는 복지 사각지대로 인한 참극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탈북 모자 사망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현행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 분야 사각지대와 부정수급에 대한 복지서비스 공급자의 인식 비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 공무원들이 복지 사각지대가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50개 시군구청 복지담당 300명, 100개 읍면동 주민센터 200명,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거급여사무소 200명 등 총 700명의 지역 복지업무 담당자 43.2%가 사각지대가 '많다'(많다 40.1%, 매우 많다 3.1%), 56.0%가 '조금 있다'고 답했다.

복지 공무원들은 신청을 통해서만 복지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현행 제도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사각지대 발생 배경을 두고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아서'라는 이들의 응답이 45.7%로 가장 많았다.

김 회장은 "탈북민들이 가장 고충을 겪는 이유는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자존심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실제 복지 사각지대의 폐혜로 지적되는 '송파 세모녀', '증평 모녀' 사건 등은 복지 제도를 신청하지 못해 생긴 참변이었다.

■"가난 증명 아닌 보장 우선해야"

정부는 탈북 모자의 사망 이후 대책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으로 월세 체납 정보를 수집하는 대상에 재개발 임대주택을 포함하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탈북 모자가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며 월세를 16개월이나 밀렸지만 당국에 통보가 되지 않아 마련된 안이다.

정부는 또 '복지멤버십'(가칭) 도입을 2021년 9월로 앞당기기로 하고 이를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예정이다. 한 번만 멤버십에 가입하면 일일이 신청하지 않아도 대상자에게 복지서비스를 자동 안내하거나 공무원이 직권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로, 2022년 4월 도입을 목표로 준비해 왔다.
복지멤버십 제도가 완비되면 멤버십에 들어온 사람에게 임신과 출산, 실직 등 상황 변화가 생길 때마다 인공지능(AI)으로 서비스 대상인지를 판정해 수급 방법을 자동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복지 혜택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복지 제도의 전제가 '보장'이 우선돼야 하는데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조사'가 더 앞서는 게 문제"라며 "부정 수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과도하게 높고 혜택의 기준이 엄격해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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