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벤처 대부 이민화 회장의 유산

이달 초 부정맥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민화 회장을 추모하는 열기가 뜨겁다. 사실 고인은 10년 전부터 부정맥의 위험성을 알고도 짧을지 모를 그의 인생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저술, 정책 보고서, 강연 등으로 보통 사람의 두세 배 넘게 일해왔다. 벤처기업인으로 화려했던 경력과는 달리 부인과 세 딸에게 남긴 물적 유산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지적 자산은 어느 성공한 기업인이나 사상가 못지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크게 보아 벤처신화였던 메디슨 창업과 부도로 이어진 1985년부터 2002년까지의 기간과 그 이후로 구분해 평가해 볼 수 있다. KAIST 박사과정 중 개발한 초음파진단기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세계 최초로 3D 초음파진단기를 출시해 세계를 놀라게 할 때까지 '기술독립군'으로서 세계도전의 전범이 됐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자체개발보다는 해외제품을 수입하는 안정적 이익창출 전략에 집중했던 것에 반해 메디슨은 초기에 저가제품인 일본의 알로카사를 따라잡다가 종국에는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도시바 제품에 도전해 성공했다. 주요 경쟁상대가 일본기업이었지만 그들과도 잘 지내면서 '메디슨 저팬'을 통해 일본 안방시장을 공략했다. 진정한 극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 시기에 메디슨 성공신화를 중심으로 휴맥스, 비트컴퓨터, 한글과컴퓨터, 터보테크 등 '기술독립군'들이 모여 코스닥 설립과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렇게 형성된 벤처생태계는 오늘날 등록기준 7만개 벤처기업을 탄생시키고 76만명 넘는 고용효과를 거두고 있다. 고인이 주도한 벤처생태계는 특별법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코스닥에서 회수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바통을 이어받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모바일 기업,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게임·콘텐츠 기업들이 대기업을 능가하는 혁신 성과를 거둠으로써 2세대 벤처혁신을 이어갔다. 또한 온·오프라인이 결합되고 있는 요즈음은 작게 시작해도 급속 성장할 수 있는 3세대 '스타트업 생태계'가 진화·발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의 발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벤처, 인터넷, 이노비즈, 게임, 한류콘텐츠, 온·오프 플랫폼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혁신 생태계는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대기업 중심 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다. 그래서 고 이민화 회장이 쌓아놓은 주춧돌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고인은 2002년 회사를 떠난 이후 실패한 기업인으로 낙인찍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가끔 힘든 내색은 있었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았고 특유의 열정도 식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경영실패 원인이기도 했던 사회참여에 오히려 적극적이었고 KAIST 교수로서 기업가정신 교육에 매진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창조경제연구회를 통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대응'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에 집중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문제는 기술과 자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미래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제도개선을 위한 혁신적 대안들을 쏟아냈다. 우리 사회가 이것들의 일부라도 완벽히 실천해 미래 혁신대응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