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생큐, 아베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9 17:20

수정 2019.08.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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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언젠가는 뒤통수 또 맞게돼
소재 국산화가 최강의 응징
[염주영 칼럼]생큐,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3년 8월 13일 야마구치현에 있는 요시다 쇼인의 묘를 참배했다. 일본 근대사에서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정한론(征韓論)의 창시자다. 정한론은 일본이 생존하려면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요시다 쇼인은 이토 히로부미(초대 조선통감)와 데라우치 마사타케(초대 조선총독), 미우라 고로(명성황후 살해범) 등을 가르쳤다. 이들은 훗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조선침략의 선봉장이 됐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한국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에 일격을 가했을 때 나는 요시다 쇼인을 떠올렸다. 아베 총리가 그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도 연상됐다. 마침 일본 우파 진영에서 신(新)정한론 얘기가 나왔다. 이번 기회에 한국경제를 초토화해 '제2의 IMF 위기'에 빠트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지난주 추가규제(전략물자 수출우대에서 제외되는 세부품목 지정)를 유보했다. 묶었던 반도체 소재 수출 가운데 1건을 풀어줬다. 기세등등하던 아베 정부를 멈춰 세운 것은 국제사회의 여론이었다. 서방 주요 언론들은 연일 일본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들마저도 '아베의 오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비판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분업을 하고, 각자 생산한 제품을 자유롭게 교역함으로써 함께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일본은 이런 국제분업과 자유무역 체제의 최대 수혜국이다. 그런 일본이 한국과의 분업과 자유무역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을 훼손하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도 해치는 행위라는 내용이다.

일본정부는 지난 6월 26일 '2019년 불공정무역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안보를 이유로 수출을 규제하면 자유무역을 저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일본은 5일 후 한국에 대해 안보를 이유로 내세워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아베 정부는 자꾸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할 권리를 찾게 되면 무얼 하려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6년 전 일이 궁금해진다. 아베 총리는 그때 요시다 쇼인의 무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없이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떨며 굴종하던 한 세기 전 조선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아베 정부는 고객의 뒤통수를 때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외국과의 교역에서 특정품목을 특정국가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면 언젠가는 뒤통수를 얻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똑같이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 무리한 일을 벌이면 우리가 보복하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얻어맞은 것에 대한 대가는 아베가 준 교훈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재인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아베가 준 교훈을 흔들림 없이 실천해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여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아베 정부가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하니 그 의사를 존중하자. 나는 이것이 아베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응징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버리자. 한국은 한 세기 전의 조선이 아니다. 두려움이 친일을 낳고, 친일이 매국과 굴종으로 이어졌던 조선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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