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살인자도 변호받아야 한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자인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형사 전문변호사다. 살인범을 비롯해 자신이 직접 변론한 다양한 범죄자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정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사실은 허구보다 감동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평생을 동고동락한 아내를 토막 살해한 노의사, 기차역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남자들을 죽인 무술 고수, 성관계 중 심장마비로 죽은 손님의 사체를 동거녀인 창녀를 위해 절단해 유기한 남자친구 등 다양한 사건들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어떤 사건이든지 변호를 받을 수 있고, 또 변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고유정 사건의 변호인 중 한 명이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해 사임했다고 한다. 희대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본인의 주장대로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 것인지는 당사자들과 신만이 알 수 있다. 제3자들은 아무도 진실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한다. 오로지 재판을 통해 사후적으로 진실을 밝혀나가는 것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의뢰인의 말을 믿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유리한 증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경우 정말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하나 믿고 항구를 찾아가는 심정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여러 번 경험한 바 있지만, 변호사도 속이는 의뢰인이 분명 있다. 그러나 정말 억울하게 기소돼 재판받다가 무죄를 선고받는 의뢰인도 있다.

지난 2018년 우리나라에서 1심에서 약 0.8%, 2심에서 약 1.7% 무죄가 선고됐다.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기소하는 사건이 100% 유죄는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99명의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1명의 억울한 시민이 없게 하려는 변호사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된 경우도 적지 않다. 39년 만에 춘천파출소장 초등학생 딸의 강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은 정원섭 목사 재심사건, 16년 만에 진범이 잡히고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등 많은 사건들이 신념과 열정으로 무장한 변호사들의 헌신 때문에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고유정 사건의 진실은 아직 알 수 없다. 피고인이 형을 유리하게 받고자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면 나중에 양형에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법원은 같은 범죄에 대해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 자백과 부인의 경우에 형량을 달리하고 있다. '개전의 정'이라는 어려운 법률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쉽게 말하면 반성하고 있느냐를 고려하는 것이다. 다만, 단 1%라도 무죄의 가능성이 있다면 변호인의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판결이 최종적으로 끝날 때까지는 여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은 바로 앞의 미래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누구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여있다. 만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의 범죄자가 됐는데, 아무도 당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절망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야만이 아닌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변호사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살인자도 당연히 변호받아야 한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