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소리나는 비상 대피 훈련
항공 모형서 '구조 외침' 실전 연습
#1. 지난 8월 18일 오후 4시 35분 서울 김포공항을 떠나 오사카로 향하던 대한항공 KE739편. 기장이 착륙을 위한 기내 시그널을 작동한지 몇 분이 지나지 않은 오후 5시 50분께 조용하던 기내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열두 살 일본인 여자 어린이 승객이 갑자기 호흡 곤란을 일으킨 것이다. 즉시 자리로 달려온 승무원은 즉각 응급조치를 시작했지만 호흡 곤란이 심해졌고,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승무원의 팔에 피멍이 들기 시작할 때 쯤 기적이 일어났다. 호흡이 돌아온 것이다.
항공 모형서 '구조 외침' 실전 연습
#2. 지난 7월 8일 미국에 살고 있는 여덟 살 최모 양은 어머니와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아시아나항공 OZ221편에 탑승했다. 출발 후 약 1시간 30분이 지났을 때 최 양은 갑자기 고열과 복통을 호소했다. 승무원들은 곧바로 응급 처치에 들어가 차가운 물수건으로 최 양의 몸을 닦아주고 대화를 시도하며 최 양의 상태를 파악했다. 함께 탑승 중인 의사는 곧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견을 냈고, 기장과 승무원들은 인근 앵커리지 공항으로 회항을 결정했다. 최 양은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항공기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두 사례는 지난 7월 이후 두 달 동안 우리 국적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두 소녀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건, 각 항공사 승무원들의 신속한 대처 덕분이었다. 전문가들은 응급 상황에선 발생 초기 최초 발견자에 의한 응급처치가 환자의 생존에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혈액순환이 정지되고 약 4분이 경과되면 뇌 손상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제주항공 승무원 교육장소...아닌가요?"
각 항공사 객실 승무원들이 매년 정기안전교육을 통해 응급 처치법, 심폐소생술(CPR) 및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실습 등 기내 항공 응급 처치와 관련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훈련을 받는 것일까. <파이낸셜뉴스>가 객실 승무원들의 훈련 과정을 직접 가서 봤다. 훈련이 한창이던 지난 5일 경기도 부천대학교 내 제주항공 객실훈련센터를 찾았다. 제주항공은 신입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8주간 서비스·안전·보안 교육을 진행한다. 그 중 기내 안전·보안 교육은 가장 혹독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예비 승무원은 비상 탈출 매뉴얼을 수십 번 반복 훈련한다. 비상상황 시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고되다. 80~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신입 승무원들이 중도에 그만 둘 정도다. 실제 이날 역시 몇몇 교육생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곳곳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태영 제주항공 과장은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엄격하게 진행한다. 훈련 도중 몇몇 교육생들은 체력적 한계로 중도 탈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상황에 정답은 없다…첫째도, 둘째도 안전"
항공 승무원의 최고 덕목은 무엇일까. 제주항공에서 승무원 훈련을 맡고 있는 서동찬 교관은 "서비스 정신 그 이상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관은 "승무원은 '안전 요원'"이라며 "촌각을 다투는 비상 상황에선 승무원이 효율적으로 행동해야 승객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승무원이 책임져야 '안전의 범위'도 다양하다. 비행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사고에 대처하려면 때로는 경찰, 때로는 의사가 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서 교관은 "실제 사고 사례 위주의 안전 훈련을 진행할 때 정답은 없다. 가르친 것 이상 잘 대응하는 교육생을 보면 뿌듯하다"며 "이들과 함께 승객들이 보다 더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 김서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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