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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존슨과 트럼프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5 17:01

수정 2019.08.25 17:16

[윤중로]존슨과 트럼프
영국 새 총리 보리스 존슨의 발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엘리제궁 거실 협탁 위에 얹힌 사진 한 장이 지난 주말 잠시 소동을 빚었다. '무례한 영국 총리'에 비판이 쏟아졌고, 마크롱의 농담을 받아준 존슨의 장난이었다는 참석자들 해명이 나오면서 사태는 급히 봉합됐지만, 그 순간의 진실은 마크롱·존슨 두 사람만 아는 일. 지난주 비로소 총리로서 공식 외교무대 데뷔식을 치른 존슨은 마크롱을 만나고 향후 여정이 만만치 않으리라 다시 확인했을 것이다. 재협상은 없다, '노딜'은 우리도 준비 중이라는 게 마크롱의 요지였다. 누구도 그처럼 스트롱맨을 잘 다룬 적 없다는 평가를 받는 마크롱, 헝클어진 머리에 어리숙한 이미지로 강력한 포퓰리즘 전술을 펼치는 선동가 존슨 총리. 유럽의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둘에게 쏟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드 브렉시트(영국의 완전한 유럽연합 탈퇴) 찬양파인 존슨의 트위터 메인 동영상은 강한 영국의 미래를 부르짖는다. 브렉시트로 최고의 영국을 만들어내겠다는 포부가 절절하다.
그는 순방에 앞서 "영국의 좋은 시절은 모두 과거라고 말한다면, 브렉시트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모두 착각"이라고 강변했다.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브렉시트)가 강행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내용의 영국 정부 비밀문서가 최근 확인됐지만, 그는 이처럼 결의를 불태우며 당찬 브렉시트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기만일까, 진심일까. 오는 10월 31일 기어코 실행될 브렉시트 판도라상자 개봉 후 그리고 그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라야 진실의 윤곽이 보일 것이니, 그 과정의 모든 결과물은 그저 영국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는 사실만 확실하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를 밀어내고 존슨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유럽은 순간 경악했지만, 어느덧 지금 상태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는 것 같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출현으로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한 면역효과인지 모르겠다. 트럼프와 존슨, 쌍둥이처럼 보이는 둘의 공식 만남은 지금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진행 중인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24∼26일)에서 전격 이뤄졌다. 물론 이들이 애초부터 같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출생지가 미국 뉴욕인 존슨은 지난 2015년 "뉴욕에 가고 싶지 않다. 이유는 엄청나게 무지한 남자 트럼프를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까"라는 농담을 던진 일화가 외신에 언급됐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EU의 협공 속 어느 때보다 미국이 절실한 존슨, 노골적으로 '노딜'을 부추기며 편가르기에 올인하는 트럼프, 둘은 더없는 연대와 우정을 과시해야하는 상황이다. 회의를 주관하는 마크롱이 이번 G7회의 공동성명 채택을 사전에 포기한 건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존슨' 커플의 향방도 주효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회의에 앞서 참모들에게 "내가 거길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수차례 푸념했다.
G7회의에서 정상 간 공식 합의 실패는 1975년 창설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애를 추구해온 서구 정치질서는 이미 붕괴와 해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결코 평화롭게 부상하지 않을 패권국 중국, 이런 중국이 실은 너무나 부러운 러시아, 세계 곳곳을 향한 이 두 국가의 개입과 충돌도 더 잦아질 것이다. 급속히 재편 중인 국제정치 새 판에서 한국 외교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우리 정부가 간절히 바라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아닌,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나라'가 돼선 절대 안되지 않을까.

jins@fnnews.com 최진숙 글로벌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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