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꺼진 판교-구로의 등대' 포괄임금제 폐지, 그 후의 이야기

저녁 6시경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 사옥을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강현수 인턴기자
'구로의 등대', '판교의 오징어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고강도의 야근이 고착화 돼 있던 게임업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기자가 찾은 판교와 구로 게임사들의 퇴근길 풍경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2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이 이달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데 이어 넷마블이 3·4분기, 엔씨소프트와 스마일게이트가 10월 중 포괄임금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포괄임금제는 연봉에 각종 수당이 포함돼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하고도 따로 수당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면 기존 연봉이 기본급으로 전환, 기본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판교 퇴근시간, 30분만 지나도 '고요'
저녁 6시 30분경. 포괄임금제가 이달부터 폐지된 넥슨 본사 사옥은 고요했다. 분명히 퇴근시간인데 너무 사람이 없어서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직원들은 이미 거의 다 퇴근을 한 상태. 저녁 6시면 상황 종료란다.

가까스로 퇴근 길 막차에 오른 직원들을 간신히 인터뷰 할 수 있었다.

넥슨 직원 최경호씨(29세·가명)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결정 되고 회사 분위기는 말그대로 '급격하게' 바뀌었다"라며 "야근은 거의 사라졌고 출근은 11시까지만 하면 돼서 아침 밥도 먹게 됐다"라고 말했다.

인근 스마일게이트의 퇴근시간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된다. 스마일게이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를 필수 협업시간으로 정한 뒤 나머지 일정은 개인이 조율해 출퇴근 할 수 있다.

스마일게이트 직원 이동현씨(36세·가명)는 "특별히 할 일 없으면 다들 네시에 집에 가는데 퇴근할 때 상사한테 보고 안하고 그냥 집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라며 웃었다.

개발주기 따라 게임사별 온도차
구로는 판교보다는 퇴근시간이 늦은 편이었다.

구로에 위치한 넷마블에서 만난 문상윤씨(37세·가명)는 "포괄임금제 폐지를 앞두고 있지만 이미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문화가 회사 안에 정착된지 오래다"라며 "다른데보다는 퇴근이 조금 늦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그래도 예전 생각하면 감지덕지"라고 회상했다.

최승우씨(35세·가명)는 "아직 할 일이 남은 사람들은 남아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강요나 눈치 주는 건 없다"라며 "그냥 정성때문에 남아서 일하는 것으로 예전만큼 구로의 등대 수준은 아닌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칼퇴가 가능한 게임사와 가능하지 않은 게임사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게임 출시 간격이 빠른 게임사 위주로 신작 출시 일정이 밀리면서 타격을 입었다"라며 "2~3년 주기로 개발을 하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업무시간 감시 우려도
다만 포괄임금제의 폐지가 마냥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들로 부터 잦은 간섭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넥슨 직원 김민주씨(34세·가명)는 "딸, 아들 모두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일 하는 시간이 자유로워져서 애들이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줄어 행복하다"라며 "부서 직원들이 다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관리자급들은 힘들어하는 눈치"라고 우려했다.

게임사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 조바다씨(44세·가명)는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면 업무시간 내에 직원들이 일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라는 회사측의 압박이 가해질 수도 있다"라며 "초과근무가 없어지는 만큼 업무시간이 타이트해 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 강현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