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홍콩 일국양제의 저녁놀을 보라

‘하나의 중국’ 가속 페달 밟자
홍콩인 자유 상실 우려 커져
연방제 실험 위험성 일깨워

지난 주말 홍콩 시민 17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10분 거리인 선전에서는 중국 무장경찰이 대규모 시위진압훈련을 하고 있었다.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는 법(일명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며 시작한 시위가 11주째 이어진 것이다.

홍콩은 면적은 서울의 약 1.82배(1104㎢)로 총인구는 740만명이다. 이 중 30%를 넘나드는 시민이 시위대열에 꾸준히 가세하는 추세다. 급기야 25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력진압을 예고하는 총소리까지 들렸는데도 그랬다.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하면서 자유와 인권이 침해될까 걱정하는 시민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그 이면엔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의 운명에 대한 홍콩인들의 짙은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홍콩은 제1차 아편전쟁으로 1842년 영국에 할양됐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두 나라 간 협약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를 적용하기로 하면서다. '하나의 국가에 두 체제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이 짜낸 묘수였다. 마오쩌둥과 달리 실용주의자인 덩은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홍콩 시장경제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했다.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잘 활용해 서방 자본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본 셈이다. 그가 홍콩에 적어도 50년간 자치권을 약속한 배경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일국양제는 야금야금 형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5세대 지도부 출범 후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2015년 가을 홍콩의 한 서점 직원과 출판사 주주 등 5명이 중국 공산당과 지도부의 비리를 담은 책을 출간하려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건이 단적인 징후다. 이번 반중 시위의 도화선이 된 송환법이 없었는데도 홍콩의 자치권이 무색해질 기미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물론 중국 당국도 일국양제 폐기를 공언하진 않는다. 다만 홍콩인들과 같은 침상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각기 '하나의 중국'과 중국식 시장사회주의와 대척점인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에 방점을 찍으면서다. 궁극적으로 '일국'을 견인하려는 중국의 구심력과 '양제'하에 정치·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는 홍콩인들의 원심력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은 선전을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지정하고, 상하이 자유무역구 확대를 선언했다. 두 도시를 홍콩의 대안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이렇듯 홍콩·중국 간 '한 지붕 두 체제'가 속절없이 저물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주룽반도 너머로 보이는 '일국양제의 저녁놀'이 왠지 먼 나라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침 현 여권 일각에서 '일국양제'나 '연방제 통일'을 염두에 두는 듯한 징후가 나타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늦어도 2045년에는"이라는 단서와 함께 '원 코리아'와 북한의 체제 보장이란 엇갈린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연방제든, 일국양제든 물과 기름을 뒤섞는 억지춘향격 실험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계사를 통틀어 이질적 체제의 수렴이 전제되지 않은 통합은 늘 갈등을 잠재한 미봉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남북 예멘이 권력분점 형태로 통일에 합의하고도 내전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게 생생한 증거다. 그렇다고 베트남식 무력통일로 체제통합을 완성할 순 없지 않나. 사회주의 체제하의 동독 주민들이 투표로 시장경제체제인 독일연방 편입을 결정한 사례가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안전한 대안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