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테니스와 90년대生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9 17:56

수정 2019.08.29 17:56

[기자수첩] 테니스와 90년대生
테니스 서브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서브를 넣기 전 네트 너머 상대편에게 꾸벅 인사하는 게 테니스 매너라고 했다. 좀 이상했지만 초심자인 내가 잘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대는 머리가 하얗게 샌 어르신이다. "테니스는 귀족 스포츠"라며 예의범절이 중요하다는 게 어르신 말씀이었다.

이달 초에는 대학 야외 테니스코트를 찾았다.
여름 더위에 친구들이 윗옷을 벗었다. 갑자기 다른 어르신들이 친구를 불렀다.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다음 주 코트를 찾으니 관리자가 불쾌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어르신들에게 민원을 받았다며 조심해달라고 했다. 이게 이를 일일까.

90년대생이 화두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참모들에게 책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다. 기업계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1980년 이후 출생한 직원 30여명의 의견을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LG유플러스는 신입사원이 임원에게 멘토 역할을 한다. 테니스코트 저편처럼 세대 간에 긴 물리적 격차가 있다는 걸 정·재계도 공감하는 것 같다.

조직과 규범에 익숙한 세대와 개인과 개성이 중요한 세대는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자신을 정의하는 잣대가 사회 혹은 스스로에게 있는지 여부다. 어르신들은 테니스는 1990년대 쉽게 배울 수 없던 중산층 스포츠인 점을 자주 말한다. '테니스 치는 사람의 행동양식은 이래야 한다'는 느낌이다. 마치 대학생은 이래야 해, 결혼은 해야지 같은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내게 테니스는 테니스일 뿐이다. 재밌는 놀이이니 자유롭게 적당히 하고 싶다. 앞서간 선배들이 만든 규칙, 예의. 얽매이는 건 때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얽매임의 기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시에 어르신들 하는 말에 네 하고 순종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르신들은 내게 테니스 동호회에 나가는지, 얼마나 배웠는지를 묻는다. 답하기 어렵다. 유튜브로 배웠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동호회에 나가고 돈을 들여 코치한테 배워야 하나 싶다.
유튜브라고 답하는 나를 어르신들도 이상하게 볼 테다. 그런 대화가 오가다보면 테니스 네트 위로 겨우겨우 주고받는 공이 생각난다.
서로 너무 다른 세대. 서로를 넘나들다 네트에 턱 걸려버리는 공. 세대 간 거리는 테니스 반대편보다 더 멀게만 느껴진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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