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日 '표현의 부자유戰'

지난달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항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하겠다고 발표한 시간, 일본 도쿄 외곽 분쿄구 구민회관에선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한 시민단체 주도 행사가 열렸다.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기획전으로 열렸다가 우익들의 협박과 반대로 초유의 중단 사태를 겪고 있는 '표현의 부자유 전(展) 그 후'와 관련한 포럼이었다. 이 전시는 한국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를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사진, 일본 천황제를 비판한 일본 작가의 작품 등 이른 바 문제작 16점이 출품됐으나 한 달 넘게 가림막에 갇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음은 물론이고, 알 권리 역시 함께 차단됐다.

기대는 없었다. 평일 저녁시간대였고, 1000엔(약 1만1000원)이나 되는 입장료를 내가며 일본의 보통 사람들이 소녀상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싶었다. '작은 소모임이겠거니…'. 솔직히 그랬다.

지난 8월 22일 도쿄 분교구민회관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 관련 강연회
이런 생각이 바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물 앞 입구에서부터 인도까지 이어진 줄은 1층부터 3층까지 계단을 타고, 차근차근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인파의 끄트머리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예약자가 태반이었고, 나처럼 예약 없이 용감하게 간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낡은 구민회관 대강당엔 500여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일부는 자리가 없어 서서 들을 정도였다. 훨체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그 이면엔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저항과 반대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표현의 부자유전(展) 그 후'란 연원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당시 도쿄 니콘살롱에선 안세홍 작가의 아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이 우익들의 반대로 지금과 같이 전시 취소 위기에 내몰린 적이 있다. 안 작가와 일부 뜻있는 일본인 활동가들이 법원으로부터 전시 중지 취소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면서 가까스로 전시를 열었고, 이것이 계기가 돼 2015년에 '표현의 부자유전'이 열리게 됐다.

당시 이 전시를 본 쓰다 다이스케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예술감독이 '표현의 부자유, 그 후' 기획전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주로 일본 내 공립미술관 등에서 문전박대당한 위안부 사진, 소녀상, 헌법 9조(평화헌법)를 테마로 한 작품들을 모았다. 예상 외로 우익들의 협박은 거셌다. 일본 정부로부터 예산을 타 쓰는 주최 측의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도 한몫했다. 사흘 만에 중단된 전시는 6일 현재까지 한 달 넘게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안세홍 작가는 "7년이 지났지만, 역사 문제나 표현의 자유에 있어 일본 사회가 더 퇴보했다"고 말한다. 최근 야마구치 도모미 몬태나주립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전시중단 사태에 대해 "관민이 일체가 된 해외 위안부 철거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10월 14일이면 완전히 막을 내린다. 남은 시간은 불과 한 달여. 이에 맞서는 일본 시민 사회의 성숙도는 기대 이상으로 높았고, 그 저항도 상당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엔 아직까지는 힘에 부친 듯하다. 이번 전시 실행위원인 오카모토 유카 큐레이터가 "표현의 부자유, 검열 문제와 싸우기 위해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7년에 걸쳐 표현의 부자유 전(戰)을 치르고 있는 일본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