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크루그먼의 충고, 규제혁신과 같이 가야

불황 때 재정확대 필요하나
체질 개선 노력도 기울여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9일 한국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면 과감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 콘퍼런스에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2008년)인 크루그먼 교수는 케인스학파로 꼽힌다. 케인스학파는 불경기 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홍남기 부총리와 좌담에서도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을 때 신중한 기조는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기획재정부가 주최했다. 홍 부총리로선 세계적 석학으로부터 듣고 싶은 답을 모두 얻은 셈이다.

기재부가 크루그먼을 초청한 의도와는 별개로 그의 충고는 경청할 만하다. 일본 사례는 반면교사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는 디플레(저성장·저물가) 함정에 빠졌다. 성장률도 마이너스, 물가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돈을 풀긴 했지만 찔끔 풀었다. 그 결과물이 잃어버린 20년이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나오기 전까지 일본은 디플레 수렁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한국 경제도 디플레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즉각 부정했지만 D(디플레)의 공포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크루그먼이 한국 정부에 디플레 해법을 제시한 것이 그 증거다.

그의 조언대로 이왕 재정을 풀 거면 과감하게 푸는 게 낫다. 정부가 새해 예산으로 전년 대비 9% 넘게 증가한 514조원을 편성한 것은 올바른 처방으로 보인다. 시기도 이를수록 좋다. 과거 일본은 선제대응 타이밍을 놓쳤다. 일단 디플레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미리 손을 쓰면 적은 돈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돈을 쓰란다고 마구잡이로 써선 안 된다. 내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이대로 가면 2023년엔 46%를 넘어선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재정건전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확대 정책은 재정준칙을 통해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국가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86조)고만 언급한다. 이를 좀 더 엄격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재정확대는 응급처방이다. 궁극적으론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 사실 규제를 풀어 민간투자의 물꼬를 틀 수만 있다면 굳이 정부가 나설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