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情]

"하루종일 걷고 2만원 벌지만…지하철 택배만 한 일 없어"

지하철 무료승차 활용한 노인 택배, 지하철만 가면 천안도 'OK'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지난 18일 오전 79세 지하철 택배원인 염두형씨가 택배 배송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다. 이날 첫 배송은 성신여대부터 의정부까지로 1만6천원이 책정됐다. 업체에 수수료 30%를 납부하면 1만1200원이 남는다. [사진=윤홍집 기자]

서울 종로구 한 지하철 택배 업체. 이른 아침부터 10여 명의 노인이 대기하고 있다.

"유정렬 할아버지 주문이요!"

직원이 호명하자 한 노인이 믹스커피를 마시다 말고 일어났다.

"뚝섬에서 물건 받아서 경기도 시흥시로 가면 됩니다. 다행히 무겁지 않은 서류네요."

설명을 들은 노인의 얼굴이 환하다. 첫 일감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지하철을 타고 뚝섬으로 가서 서류를 받은 뒤 경기도 시흥시로 배송하면 임무 완료.

예상 소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거리가 먼 만큼 단가도 높아 2만원으로 책정됐다. 수수료 30%를 업체에 떼어주면 1만4000원이 남는다.

"이 정도면 월척이지." 노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나섰다.

지하철 택배원인 염두형씨가 성신여대 인근 한 사무실에 도착해 택배 물건을 받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하철 택배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 지하철에 무료로 승차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다.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약 2000명의 노인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 운임은 6~7000원 선이다. 거리와 무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파주든 천안이든 지하철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든 '오케이'다.

지난 18일 방문한 A업체에선 35명의 노인이 지하철 택배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인당 3건에서 많게는 5건을 담당한다. 수익의 30%를 택배업체에 납부하면 하루 평균 2만원 남짓을 손에 쥘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지하철 택배를 하는 노인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용돈 벌이나 운동 삼아 일을 한다는 노인이 적지 않았고, 단순히 '쉬고 싶지 않아서' 라고 말한 노인도 있었다.

41년생으로 올해 79세인 염두형 씨의 경우가 그랬다. 40년 넘게 도배일을 하며 쉬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일주일에 6일씩 근무해 동료들 사이에서 '성실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염씨는 "하루에 8시간 넘게 지하철 타고 걸어 다니는데 힘들기야 하지"라면서도 "일할 때가 좋다.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손주에게 용돈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번 태풍이 왔을 때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사비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면서 "택배도 신뢰로 하는 일이다. 내 일을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지겠나"라며 웃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A업체에는 노인 택배원이 쉴 수 있도록 대기실이 마련돼있다. 배송 정보 등은 스마트폰으로 제공해 택배원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근무할 수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하철 택배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근무자가 원하는 만큼 일하고 퇴근이 자유로울 정도로 유연하다. 본인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언제든 근무를 조정할 수 있다. A업체는 노인의 체력을 고려해 3kg가 넘는 주문은 받지 않고 있다.

배송 정보나 지도 등은 스마트폰 어플로 제공되기 때문에 스마트폰 숙지는 필수다. 업체에서 베테랑 택배원으로 꼽히는 75세 박문수씨는 택배보다 스마트폰을 익히는 게 더 어려웠다며 머쓱해 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스마트폰을 꼭 써야 하나 싶었지만 익숙해지니 편하더라"며 "최근엔 계좌입금하는 손님이 많아 스마트뱅킹도 배웠다. 계좌번호 정도는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동대문 종합시장 앞 거리. 대기실이 없는 노인 택배원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택배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지하철 택배 업계에서 휴식 공간이 있는 업체는 근무 환경이 좋은 편에 속한다.

사무실도 없이 길거리에 의자를 놓고 주문 전화를 받는 업체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부 택배원은 지하철 승강장에 우두커니 앉아 몇 시간씩 대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동대문 종합시장 앞 인도에는 30여 명의 노인이 간이 의자에 앉아 택배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2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73세 이근찬씨는 "요즘같이 날씨가 좋으면 할 만하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고생"이라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리가 부서져라 걸어도 잠시 쉴 곳이 없다.
승강장에서 지하철 기다리며 앉아 쉬는 게 고작"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나이 들어 일자리 구하기 힘든 걸 생각하면 꾹 참는다"며 "이 일도 못해서 아쉬운 노인이 많다. 몸이라도 건강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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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