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흔들 수 없는 나라의 경제 조건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있을까?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호시탐탐 스위스 침공을 노렸다. 스위스 국민은 똘똘 뭉쳐 너희도 적잖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 중립국을 표방하면서도 안보에 대한 각성이 있었기에 독일의 야욕을 꺾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대중국 경제의존도 증가세가 너무 빠르다는 것까지 경계한다. 이처럼 안보나 경제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만큼 대응태세가 철저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안정성에 대한 도전이 끊임없다. 중국, 러시아와 북한은 우리 안보역량을 부단히 시험한다. 일본도 우리 산업생태계를 뒤흔든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번 사태는 한국의 현주소를 일깨웠다.

역사상 경제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복원력이 충만할 때만 대외충격 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서서히 이전 상태로 회복했었다. 특히 2차대전 후 경제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신세를 단 한번만 진 나라도 찾기 어렵다.

대외 경제충격에 대한 복원력은 산업생태계의 건강성, 즉 면역력에서 비롯된다. 우리 무역의 국민총생산 대비 비중이 너무 높아 내수확대를 통해 세계 경제변동의 영향을 줄여야 한다. 제조업 부활이 절실하다. 국제 분업체제에서 주로 최종재를 담당한 우리 제조업은 경쟁력 약화로 그 역할을 지속하기 어렵다. 세계 경기나 경쟁력의 변동에 너무 민감해졌다. 신산업을 발굴하거나, 기존 산업의 상류인 중간재나 기초재 또는 생산장비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거나, 최종재에 바탕을 둔 서비스산업 활성화로 하류산업의 다원화가 필요하다.

격변하는 산업생태계에서 생존 개념을 설계하고 상품화해 내려면 무엇보다 전문가나 장인의 집단이 두텁게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계층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연구개발투자의 효과성도 높여야 한다. 국민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선진국 내 상위권이지만 기초기술의 대외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연구개발 정책은 전시성 단기성과나 소규모 과제 양산 위주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기초학문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것도 이런 행태에서 비롯된다. 장기과제나 기술난이도가 높은 영역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산업경제가 튼실해도 금융지지력 없이는 반쪽 면역력이다. 원화를 준기축통화로 격상시켜야 한다. 무역규모 1조달러와 외국인 국내간접투자 0.6조달러 경제에서 4000억달러 외환보유액으로 외환시장 변동성을 제어하기엔 한계가 있다. 경제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캐나다나 호주는 준기축통화국으로서 대접받는다. 호주처럼 10년 장기계획을 세워 원화의 국제화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신뢰도도 중요하다. 국제 규범이나 국가 간 협약의 준수 등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인식을 축적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 경제력과 군사력 등이 어우러질 때에 누구도 흔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