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디플레, 일본처럼 안 되려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3 17:33

수정 2019.09.23 17:33

금리·재정으로 용써봤자
인구함정에서 못 벗어나
증여촉진이 현실적 해법
[곽인찬 칼럼]디플레, 일본처럼 안 되려면
디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나왔다. 8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되레 낮아졌기 때문이다. 성장이 바닥을 기고 물가가 뒷걸음질하면 디플레다. 디플레는 만성 골병이다. 그래서 최선의 방책은 예방이다. 한국 경제는 일본처럼 디플레의 늪에 빠질까. 통계청은 단정하긴 이르다고 본다.
일본이 디플레에 허덕이던 지난 2002년 물가하락 품목이 전체의 67%에 달했다. 광범위한 물가하락은 디플레의 징후로 꼽힌다. 우린 8월의 경우 32% 정도다.

하지만 속은 영 찜찜하다. 다름아닌 인구 때문이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두고 30여년 전 플라자합의와 뒤이은 자산버블 붕괴를 범인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든 그 밑바닥에 인구 문제가 깔려 있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일본 인구는 2008년에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고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디플레 대응책을 펼 때 일본은 반면교사다. 우린 일본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후발주자의 이점이다. 그 점에서 이코노미스트 모타니 고스케가 2011년에 쓴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이란 책은 참고할 만하다. 이해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률(-0.12%)을 기록했다. 디플레의 한복판에 있던 시기다.

모타니의 책엔 '경제는 인구로 움직인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경기의 파도가 아니라 인구의 파도, 즉 생산가능인구 곧 현역세대 수의 증감"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해법이 흥미롭다. 정통 이론은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즉 성장률을 높이면 경제가 살아난다거나 생산성을 높여 인구 감소에 대응하자는 제안은 잘못된 처방전으로 못 박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대책, 곧 출산율을 높이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출산율은 이미 하락세로 굳었다. 출산율을 조금 높여봤자 일본판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가 빠져나간 공백을 메울 수도 없다. 출산 적령기 여성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모타니는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먼저 생전 증여의 촉진이다. 부(富)의 이동으로 소비를 살리는 게 목표다. 노인왕국 일본에선 부모의 재산을 상속할 때 자식의 평균 나이가 67세다. 이미 자식도 노인이다. 그러니 재산을 받아봤자 금고 아니면 우체국 예금에 넣어두곤 끝이다. 이래선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 정부가 생전 증여에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면 부모는 세금을 아껴서 좋고, 자식은 미리 유산을 받아서 좋다. 일본 노인들은 1400조엔(약 1경5512조원)이나 되는 돈을 그냥 묵혀두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고학력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하자는 제안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일본 여성의 취업률은 45%가량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다. 모타니는 여성 취업률이 높은 지역이 오히려 출산율도 높다고 말한다. 외국인은 장기체류 노동자가 아니라 단기체류 관광객으로 모시면 된다. 외국인을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D(디플레)의 공포를 떠올리면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게 부질없어 보인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인구, 그중에서도 생산가능인구(15~64세) 축소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인구패턴을 따라갈 공산이 크다. 디플레에 선제대응하는 차원에서 모타니의 아이디어를 미리 써보는 건 어떨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