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액상 전자담배 세율인상 꺼내든 기재부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3 17:50

수정 2019.09.23 17:50

[기자수첩] 액상 전자담배 세율인상 꺼내든 기재부
8명이 사망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그 원인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를 지목했다. 정확히 말하면 마리화나 복합물질인 THC(tetrahydrocannabinol)를 넣은 전자담배와 첨가제를 혼합한 가향 전자담배가 주범으로 꼽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금지 계획을 발표했다.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일제히 판매중단 행렬에 동참했다.

반면 우리 보건당국은 지난 20일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공급·판매 채널은 그대로 놔둔 셈이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는 사흘 뒤인 23일에 '담배 과세 현황 및 세율조정 검토 관련 향후계획 배경'에 대한 브리핑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사실상 세율인상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다.

이날 브리핑의 골자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세부담금이 일반담배 대비 43.2%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담배 종류별 객관적 과세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맡겼다"였다. 간단히 말해 정부의 이번 발표는 '전자담배세 인상 공식화'가 아닌 '전자담배세 인상 검토 공식화'였다. 이미 정부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는 수차례 나온 터라 새삼스레 '인상 검토'를 공식화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부가 복지부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 권고에 맞춰 세율인상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이 제기될 수 있다. 세율은 정부가 특정 품목의 수요를 조절하고 싶을 때 자주 꺼내 쓰는 카드여서다. 하지만 담배는 비탄력적 수요를 갖고 있는 대표적인 재화다. '술 끊은 사람은 상대해도 담배 끊은 사람은 상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거꾸로 얘기해 흡연자들은 세금 조금 더 붙는다고 해도 꿈쩍 않는다. 정부의 곳간만 두둑해질 뿐이다.

기재부는 브리핑에 앞서 기자들에게 "신종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과세체계에 대해 문의가 많이 들어와 별도의 자리를 만들었다"며 "정부의 정책을 새로 밝히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상한다고 하기도, 그렇다고 인하한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알겠다. 이 판국에 그 어떤 방향도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 자리가 '전자담배 세율인상 전초전'으로 해석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ktop@fnnews.com 권승현 경제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