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청춘의 시효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미얀마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과정에서 1983년 미얀마의 건국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려다 북한의 테러로 숨진 17명의 순국자 추모비를 방문하는 보도를 보았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그들 중 한 분인 연세대 교수이셨던 함병춘 교수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를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의 대학원 입학식 격려사 때문이다. 요지는 '여러분, 청춘을 불사르지 마십시오. 지금 이 사회의 주역이 된 4·19세대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20여년 전 외치던 자유, 정의, 진리가 실현되었나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젊음과 함께 그들의 신념을 4·19 때 다 불살라 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꼭 젊음을 간직하셔서 때가 되면 그 젊음으로 세상을 바꾸십시오.' 본인이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거치면서 4·19세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경험하고 평한 것이어서 특별하게 들렸다.

지금 여와 야 양측에서 정치의 주역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586세대다. 그들의 20대도 4·19세대와 같았다.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기존 통념을 뛰어넘는 그들의 항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넥타이 부대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들이 30대를 넘기면서 정치에 참여할 때, 많은 국민들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지원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특권이 사라지고 정의와 평등이 보편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도 50대를 넘어 60 고지를 향하게 되면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여와 야로 나뉘어 정권을 잡고 그들의 정치를 실험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 심화되고, 계층 간 불평등은 더 커졌다. 그러면서 사회불안 요소는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한 성찰이 없다.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목표이다 보니 이를 위한 것이라면 가짜뉴스도, 여론조작도 거리낌 없이 실행한다. 정치가 전쟁이 되었고, 여느 전쟁에서처럼 정의와 상식은 없고 오직 내편과 네편만이 있다. 이제는 국민들마저도 편을 나눠 길거리에 나오게 만드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 아무리 잘 포장하려 해도 지금의 모습은 자신들이 확보한 기득권을 공고하게 다지려고 애쓰는 것 이상일 수 없다. 그동안 바뀐 것이라고는 이 사회의 특권을 누리는 주체이고, 대를 이어 누리려 몸부림치는 반칙뿐이라는 말이 안타깝다. 세대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청춘의 불꽃이 꺼져가는 모습이다. 청춘은 시효가 있음인가.

286이 586이 되어가는 사이 바깥 세상은 그 이상으로 바뀌었다. 죽의 장막은 걷혔고, 안보도 경제도 강하게 연결된(tightly coupled) 세계화 시대가 됐다. 죽의 장막 시절 컨테이너 크기의 슈퍼컴퓨터 여러 대가 우리 손안에 쥐여지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 있다. 286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시대를 586이 되어 살고 있다. 역사는 발전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 과제는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불꽃이 살아있는 청춘들의 몫이다.
586세대가 마지막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청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역사는 제자리에 머문다. 아쉽게도 청춘이란 것이 불사르지 않는다고 간직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